[이슈분석]제구실도 못하면서 산업 옥죄된 그 녀석과 이별에 16년이 걸렸다

온라인게임 결제한도는 무분별한 사행성에 제동을 걸지도 못하면 PC 게임을 옥죄는 역할만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온라인게임 결제한도는 무분별한 사행성에 제동을 걸지도 못하면 PC 게임을 옥죄는 역할만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현재 PC온라인 게임에서 성인은 한 달 50만원, 청소년은 7만원 이상 결제하지 못한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2003년 과소비 억제 취지로 결제 한도를 최초 적용한 후 지금까지 이를 유지해 왔다. 게임위에서 게임 등급을 받지 못하면 아예 서비스를 못하기 때문에 게임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지켜왔다.

온라인게임 결제한도 시발점은 사행성이었다. 2003년 게임 사행성이 지적받자 게임업계가 온라인게임 정액 요금이나 아이템 구매에 성인은 월 30만원, 청소년은 월 5만원을 넘으면 안 된다는 자발적 규약을 만든 것이 시초다.

게임 규제안이 대부분 그렇듯 본래 청소년보호를 위한다는 관점에서 규제안이 만들어 졌다. 청소년은 월 7만원으로 결제 한도를 제한했다. 이 과정에서 성인 결제 월 30만원 상한선도 더불어 만들어졌다.

2007년에는 게임물등급위원회(현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등급분류 신청 문서에 게임의 월 결제한도를 기재하게 했다. 그렇게 2019년까지 이어졌다. 2009년 성인 이용자는 월 50만원, 청소년은 월 7만원으로 한도 상향 조정이 이뤄진 것이 개정의 전부다.

온라인게임에 결제 한도를 둔 것은 별도의 법으로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근거가 없는 명목상의 자율 규약이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위가 각 게임사로부터 게임 심의 신청을 받으면서 결제한도를 설정하지 않으면 심의를 내주지 않는 방식으로 결제한도 설정을 강요해왔다.

온라인게임은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서비스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현행 법체계를 통해 온라인게임 결제한도 규약은 말만 자율이지 사실상 강제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용자 지출 상한을 정해 게임사에 수익 마지노선을 정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임업계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이런 '그림자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결제 한도 규제는 성인 자기결정권 침해였다. 개인 자율성에 기초한 소비 영역을 국가기관으로부터 강제 당했다. 콘솔이나 패키지 게임을 사는 건 문제가 없지만 온라인게임은 문제가 됐다.

반면에 구글, 애플 등 해외 플랫폼 기업이 주도하는 모바일게임에는 이를 적용받지 않았다. 스팀, 오리진, 유플레이 등 해외 게임사가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하는 게임은 결제 한도가 적용되지 않았다. 형평성 문제가 발생했고, 역차별 논란이 일었다.

산업이 변화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모바일 쏠림 현상에도 일조했다. 규제 한도가 없는 모바일게임 매출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몇년 동안 공들여서 수익이 낮고 인력이 많이 들어가는 온라인게임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다양성 문제가 야기된 원인이다.

규약 취지가 사실상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았다. 게임 결제액을 제한한다는 건 게임 사용자의 과도한 소비를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목적이다. 하지만 게임 이용자가 우회적으로 결제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고 또 사설 사이트를 통한 거래가 만연하면서 게임사가 아닌 거래 대리인만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아이템 거래사이트에는 월 결제 한도가 적용되지 않아 장외 거래로 얼마든지 고액 게임 재화를 구매할 수 있다.

결국 온라인게임 결제한도는 무분별한 사행성에 제동을 걸지도 못하면서 PC 게임을 옥죄는 역할만 해왔다. 게임 이용자는 법정 근거 없이 부당하게 제한당한 자율권을 16년 만에 돌려받게 된 셈이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