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를 중심으로 수출을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우리나라 제조업 수출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반도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13대 품목 중 가장 비중이 크다. 지난 2016년에는 전체 수출 중 반도체 비중이 12.6%였으나 2018년 9월에는 24.5%를 차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후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세계 반도체 시장 성장이 둔화하면서 반도체 수출비중은 지난 5월 16.4%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주력 수출품목 1위다.
디스플레이는 지난 5월 기준 수출 비중 3.4%를 차지한 8위 품목이다. 중국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패널 가격이 하락했고 이에 따라 국내 기업이 생산량을 조정하면서 LCD 출하량이 감소했지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새로운 수출 품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모바일과 프리미엄 TV용 OLED 패널을 중심으로 디스플레이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업계는 일본 정부의 이번 규제가 한국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반도체를 겨냥했다고 봤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 점유율이 높은 주요 소재를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규제 대상으로 지목한 불화수소(에칭가스)는 반도체 웨이퍼 세정 공정에 사용한다. 디스플레이에서도 세정 공정에 불화수소를 쓴다. 대부분의 금속을 녹일 정도로 부식성이 강해 실리콘 웨이퍼 불순물을 제거할 때 사용한다.
일본 스텔라와 모리타가 반도체용 초고순도 불산을 공급하는 대표 기업이다. 세계 시장의 약 90% 이상을 장악했다.
포토레지스트는 웨이퍼에 회로를 인쇄하는 노광 공정에서 사용하는 소재다. 2012년에는 일본이 세계 시장의 약 99%를 점유할 정도였으나 동진쎄미켐이 불화아르곤(ArF) 이머전 포토레지스트를 국산화하고 중국에서도 일부 생산을 시도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하면서 포토레지스트 기술 난도도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 회로 선폭이 수 나노미터 수준으로 미세화하면서 극자외선(EUV) 공정이 등장했고 이에 최적화된 포토레지스트가 필요해지는 등 고해상도, 고감도, 화학 안정성 등을 갖춘 소재가 요구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일본이 수출 규제 품목으로 언급한 불화 폴리이미드(fluorinated polyimide)는 폴리이미드(PI)에 불소 처리를 가한 것이다. 내열성, 발수성, 내화학약품성이 높고 전기·광학 특성이 좋다고 평가받아 다양한 광학 재료로 사용된다.
폴더블에 사용되는 투명 PI에 불화 폴리이미드가 사용돼 차세대 OLED 제품을 상용화하는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일본 스미토모화학에서 투명 PI를 공급받고 있어 당장 '갤럭시 폴드' 공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폴더블 스마트폰의 경우 아직 제대로 상용화되지 않은 만큼 당장 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폴더블용 투명 PI를 공급하는 업체는 일본 스미토모화학, 한국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가 대표적이다.
만약 일본의 수출 허가가 지연되거나 불허돼 공급 차질이 예상되면 국내 기업으로 대체할 수 있어 이번 규제에 따른 악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아직 폴더블 스마트폰을 정식 출시하지 않았고 이미 국내 업체와 제품 성능 테스트를 하는 등 공급망 다변화도 준비하고 있다.
기존 상용화된 플렉시블 OLED용 박막트랜지스터(TFT) 기판 생산에도 불화 폴리이미드가 사용돼 세계 시장의 약 96%를 점유한 한국 패널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HS코드를 제시하지 않아 추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고화질 OLED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화소 격벽인 PSPI(photosensitive polyimide)를 형성할 때도 불화 폴리이미드가 쓰인다. PSPI는 OLED를 증착할 때 화소간 경계를 형성하고 전극간 간섭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 불화 폴리이미드는 시스템반도체용 중간막 절연필름, 반도체 부품용 봉인재료, 광학부품 등에도 사용돼 추후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한다. LCD에 사용되는 액정배향막에도 불화 폴리이미드가 사용되므로 이 분야까지 영향을 받을지도 살펴야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세세한 HS코드를 규정하지 않아 실제 수출 규제 범위를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며 “향후 어떤 기업이 어떻게 재료 수급에 영향을 받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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