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현장에 복귀한 게 맞나 싶다. 현안을 꿰뚫고 있었다. 이야기에 막힘이 없다. 관록과 연륜의 힘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특유의 친화력도 변함없다.
조재구 홈초이스 대표는 케이블TV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산 증인이자, 주역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케이블TV 상용화 이전인 1993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설립을 위한 준비위원회에 합류, 조사연구실장·사업지원실장 등을 맡았다. 케이블TV 산파 중 한 명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두 곳과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두 곳에서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방송개혁위원회에 이어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에도 참여했다.
자타공인 케이블TV 베테랑인 그가 3월 말 홈초이스 대표로 취임하며, 10년 공백을 뒤로하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커녕 자신감이 충만했고 의지는 차고 넘칠 정도다.
조 대표는 “홈초이스는 글로벌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다.
취임한 지 100여일에 불과하지만 해박한 지식과 남다른 감각으로 홈초이스 지향점도 설정했다.
혁신을 위해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그는 “과거 케이블TV가 뉴미디어 시장을 개척한 것처럼 홈초이스도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뒤쫓으면 1등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담 = 김원배 통신방송부장
-홈초이스 대표로 복귀했다. 감회는.
▲고향에 온 것 같다. 취임 이후 100일간 홈초이스를 파악하고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어 설렌다.
유료방송 시장이 급변해 홈초이스가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 종합편성채널,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 모두 상황이 같다.
중요한 건 '누가 빨리 바뀌느냐'다. 42.195㎞ 마라톤을 하는 데 10㎞ 지점에서는 누가 우승할지 알 수 없다. 남은 32.195㎞가 중요하다. 순위가 역전될지, 결과는 그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홈초이스 미래는 홈초이스 CEO뿐만 아니라 구성원 전체 생각과 비전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홈초이스는 경쟁력 있는 회사다. 홈초이스 임직원과 함께 할 수 있어 든든하고 기쁘다.
-취임사가 특별했다.
▲PPT로 5개 사진을 보여주며 취임사를 대신했다. 홈초이스 현재와 미래를 망라했다.
현재 홈초이스는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배와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자칫 좌초될 수 있다며 위기의식을 심어줬다.
불필요한 공론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를 보여주고 중국을 개혁 개방한 등소평 '흑묘백묘론'에 대해 설명했다.
또 IPTV 3사에 이어 넷플릭스, 유튜브 등 OTT에 둘러싸인 현 상황을 보여주고 홈초이스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 사진은 잔잔한 바다 위 요트 사진이다. 모든 게 이뤄질 때 홈초이스도 순조로운 항해를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어떤 변화를 도모할건가.
▲글로벌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홈초이스는 지금까지 케이블TV 가입자에게만 VoD를 제공했다. 폐쇄적인 방식으로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는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뿐만 아니라 콘텐츠 제작과 유통 등 다양한 서비스로 세계 미디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한국처럼 시장이 작은 나라는 무조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다양한 플랫폼으로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다.
디지털케이블 TV VoD는 물론 8VSB 등 이용자 확대로 수익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또 VoD 회사에서 종합 미디어 콘텐츠 회사로 도약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플랫폼도 다양화할 방침이다.
-가입자 대부분이 시니어층이다.
▲가입자 60% 이상이 50·60·70대로 고령자인 건 맞지만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시니어 고객은 홈초이스 기회이자 강점이다. 대부분 스마트폰 이용하고, VoD를 찾아 시청하거나 영상 제작에 참여하는 등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수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평가했다.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소비하고, 나이든 사람은 돈을 많이 안 쓴다고 봤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사회적으로 시니어가 주력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오랜 기간 케이블TV를 이용한 충성 고객이다. 효과적으로 VoD 마케팅을 한다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매출 증대가 가능한가.
▲VoD를 이용하지 않는 케이블TV 잠재 고객이 많다. VoD 편의성을 알릴 수 있다면 이용자가 늘 것으로 예상한다.
홈초이스는 지난해 10월 시니어 특별관 '청춘시대'를 개관했고, 올해 4월 시니어 맞춤형 콘텐츠 큐레이션 채널 '청춘시대TV'를 개국했다.
시니어 감성에 맞는 영화와 드라마, 추억의 콘텐츠 등 VoD 약 3000편을 제공해 호응을 얻고 있다. 홈초이스는 시니어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급·제작할 계획이다.
500만명에 이르는 8VSB 가입자를 대상으로도 VoD를 제공할 계획이다. VoD 제공에 필요한 셋톱박스 도입을 케이블TV와 논의 중이다. 3만원 수준의 저가 셋톱박스로 충분하다.
-IT 접목도 고려하나.
▲빅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해 가입자를 관리해야 한다. 무작정 수많은 VoD 콘텐츠를 모아놓고 찾아보라는 식으로 판매하면 안 된다. 가입자당 평균매출(ARPU)을 높이려면 가입자별 시청 행태를 분석해 VoD 콘텐츠를 제시해야 한다.
넷플릭스가 성공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홈초이스는 이전까지 뒤처져 있었다. 어느 연령대가, 어느 성별이, 어느 시간대에 어떤 콘텐츠를 즐기는지 분석해 활용할 계획이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대응은.
▲홈초이스도 VoD를 유통하는 플랫폼을 다양화해야 한다. 케이블TV 가입자에게만 국한하면 홈초이스는 미래가 없다. 현재 VoD 이용이 가능한 디지털케이블TV 가입자는 약 730만명이다.
모바일 시장은 유료방송 시장보다 규모가 크다. 미디어 서비스가 가능한 4세대·5세대(LTE·5G) 이동통신 가입자는 5700만명 수준이다.
홈초이스도 주주사와 긴밀하게 모바일 시장 진출을 논의하고 있다. 중소기업도 OTT 서비스 출시했다. 홈초이스라고 못할 게 없다. 필요한 기술과 시스템을 모두 갖고 있다.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계약만 하면 가능하다. 글로벌 시장까지 내다볼 수 있다. 도전할 기회는 많다.
-해외 시장, 가능성 있나.
▲규제가 적고 한국 콘텐츠 수요가 있는 국가를 우선 공략해야 한다. 아시아가 0순위다. 이후 유럽, 북미 등에 진출하는 방안이다. 중국은 규제 상황을 고려할 때 후순위다.
VoD 문화가 없는 국가에선 개척하면 된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한국 콘텐츠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현지 콘텐츠를 수급해 VoD로 시청하는 문화를 만들면 된다. VoD 시청문화 자체를 다른 국가에 전수하면 된다.
-주주사(케이블TV)가 반대할 듯하다.
▲홈초이스 수익이 결국 주주사인 케이블TV 수익이다. 플랫폼 다양화 등 다각화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홈초이스는 독립 회사가 아닌 케이블TV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CJ헬로, 티브로드, 딜라이브, 현대HCN, CMB, KCTV제주방송이 주주다. 개인 및 제3자 지분은 0%다. 다만 투자비가 필요한 경우에 주주사와 협의가 필요하다.
-자체 콘텐츠 제작 사업은.
▲자체 콘텐츠 제작은 글로벌 종합 콘텐츠 기업이 되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단순히 VoD 콘텐츠를 공급하는 건 한계가 있다.
홈초이스는 우수한 UHD 콘텐츠 제작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2014년 세계 최초 UHD 채널 유맥스를 개국했다. 현재까지 제작한 UHD 콘텐츠만 100여개 타이틀, 500여편에 이른다. 지상파 방송사보다 UHD 콘텐츠 제작량이 많다.
유맥스 채널은 2018년 방통위 방송콘텐츠 제작역량 평가에서 UHD 채널 중 유일하게 '매우 우수' 등급을 받아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특집 다큐멘터리 두 개 작품을 제작 중이다. '블록체인의 도시 두바이'는 국내 다큐멘터리 사상 처음으로 8K로 제작되며 12월 방영 예정이다. '직지, 세상에 나오다'는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 콘텐츠를 한국, 프랑스가 최초로 공동 투자·제작하는 형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홈초이스 CEO로서 주주와 임직원에게 약속한 바를 지키고 싶다. 일말의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국내 미디어 시장은 대격변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뉴미디어를 탄생시킨 케이블TV는 그동안 국내 미디어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매우 크다.
케이블TV가 일궈낸 성과와 노력이라는 가치가 기술 및 미디어 환경 변화로 손상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리=박진형기자 jin@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조재구 대표는...
조재구 홈초이스 대표는 케이블TV 출범 이전부터 유료방송에 입문, 약 15년간 몸을 담았던 인물이다.
1993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설립되면서 홍보조사 국장 및 조사연구 실장을 거쳐 정책제도분과위원장을 맡았다.
조 대표는 2000년 이후 CJ미디어 부사장, CJ헬로비전 대표, 한빛아이앤비 총괄 사장 등을 역임하는 등 남다른 현장 경험을 축적했다.
2004년 중국전문 종합편성채널을 지향하는 중화TV를 설립했다.
2009년 중국 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돌연 유학길에 올랐다. 중국인민대 신문대학원에서 미디어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중국산동대 언론대학원 초빙 교수,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다.
2014년부터 한중미디어연구소 대표를 맡아오다 2019년 3월 이를 포함해 모든 직함을 정리하고 홈초이스 대표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