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 이달 말로 공공기관 전환 1년차를 맞는다. 융기원은 '공공융합플랫폼'을 구축해 공공성을 가진 데이터로 경기도민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로 데이터가 속속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실업문제 등 경기도와 대한민국이 당면한 사회문제 해결 솔루션을 제공한다. 판교에서 시작한 자율주행 실증단지, 시흥시 스마트시티 구현지원 등이 공공융합플랫폼 구축의 시작이다. 정택동 원장을 만나 그가 생각하는 융기원 발전 방안과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대담=김원석 성장기업부장
-'공공융합플랫폼' 구축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체감 가능한 성과가 있는가.
▲공공융합플랫폼은 크게 세 가지다. 차세대 교통시스템, 미래형 도시설계, 지능형 헬스케어다. 설득하기 매우 어렵다. 현실로 잘 다가오지 않아서다. 하지만 빨리 다가올 것이다. 교통시스템을 예로 들면 자율주행차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운전석이 없는 첨단기술이 집약된 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보다 자율주행차가 갖는 사회, 경제적 함의가 더 크다. 공공융합플랫폼 중요 사례다. 자율주행차가 들어서면 연쇄적으로 도시구조, 행정, 복지 등 삶의 구조와 틀이 모두 바뀐다.
자율주행차가 사회에 흡수돼서 순기능을 하려면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내연기관차처럼 제조사가 중요한게 아니라 플랫폼이 중요하다. 관제시스템, 데이터 판매, 비즈니스 연계 등이다. 그런 플랫폼이 민간이 하는지 공공이 하는지가 문제다. 공공이 하면 경쟁력이 떨어지고 비용은 올라간다. 민간은 비용 절감 등 경쟁력이 있지만 공공성이 사라진다. 우리 사회에 선택의 과제가 주어졌다.
-플랫폼은 공공과 민간 중 어디서 주도해야 하나.
▲자율주행차에 걸쳐 있는 플랫폼은 공공성이 중요하다. 누가 어디로 다니는지 민감한 개인정보가 있어서다. 교통관제는 지금은 경찰청이 하고 있다. 만약에 구글, 아마존 등 민간 플랫폼이 탑재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마치 국방을 구글에 맞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공공에서 전부 맡는다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플랫폼을 몇 대 몇으로 나눌 수도 없고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그래서 공공융합플랫폼이 들어섰다. 민간과 공공을 나누기 힘든 스마트네이션, 스마트시티 등 역할을 지금부터 찾아야 한다.
플랫폼은 융합 플랫폼이어야 한다. 사람이 그 안에 살고 있고 소재도 중요하다. 일본 문제와 비슷하다. 우리가 반도체를 파는데 왜 일본이 열쇠를 가지고 있을까. 반도체에 소재가 왜 중요한지 잘 모른다. 핵심이 중요하다. 부담은 최소화하고 수익은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과거에는 물리, 화학, 전자, 기계 등 다 나눠져 있었다. 자율주행차는 분리됐던 것이 다 모여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을 갖는다. 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자율주행차뿐만 아니라 원격의료, 스마트시티도 마찬가지다. 과거 학제, 전공으로 나눌 수 없다. 그런 핵심 요소를 모아 공공융합플랫폼으로 명칭했다.
-공공과 민간 플랫폼 장단점을 실례로 든다면.
▲공유자전거를 보면 된다. 서울시와 수원시가 운영하는 방식을 보면 답이 나온다. 수원시 반디클은 비용도 싸고 만족도도 높다. 하지만 중국 기업이 운영하기 때문에 언제 나갈지 모른다. 서울시 따릉이는 공공에서 운영해서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서비스 문제도 있다. 하지만 사업을 접고 나갈 걱정은 없다.
문제는 공공성을 어떻게 담보하는지다. 비즈니스만 하면 문제 없는데, 공공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가장 필요하다. 국가서비스를 향상시키려면 최적점을 찾아야 한다. 최적점이 모이면 세계 트렌드를 끌고나갈 것이다. 답을 찾아가야 한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경기도자율주행센터가 5월 말 오픈했다. 지금까지 융기원은 제로셔틀 개발부터 실증까지 주관했다. 성과와 앞으로 계획은.
▲융기원은 차보다 도시에 중점을 둔다. 그게 경쟁력이다. 지금 있는 도시에 운전자 없는 차가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율주행차에 맞춰서 도시가 바뀌어야 한다. 신호등 같은 교통체계시스템에 자율주행차를 넣는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사회가 변한다고 하지 않나. 통신만 빠르게 해서는 해결이 안된다. 다양한 하드웨어와 결합해야 한다.
가시적인 성과는 제2판교 자율주행실증단지에서 나온다. 전임 지사 시절 그린벨트를 행정적으로 풀어줬다. 기술은 선진국보다 뒤떨어지더라도 데이터를 많이 모을 수 있다. 주변환경, 규제, 행정 등 데이터를 더 모아야 주 도시 자체를 설계할 수 있다. 기술경쟁에서는 조금 뒤쳐져도 환경을 만들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시흥시 스마트시티는 어떻게 운영하나.
▲시흥에 국토부가 스마트시티 사업을 진행한다. KT가 주사업자고 융기원은 공공 분야를 맡아서 공공융합플랫폼으로 설계한다. 콘셉트는 도시재생이다. 시흥은 굴뚝산업이 발달했다. 과학기술이 고령화시대 도시 주변부에서 퇴락해가는 지역, 낙후돼서 사양화하는 공단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과학기술이 예전과 다르다. 첨단산업뿐 아니라 도시재생 등 낙후된 지역을 바꾸는 역할도 한다.
대도시 주변부 도시재생, 초고령화 시대 독거노인, 장애인, 산동네 등에 과학기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만든다. 단순 복지차원 도움이 아니라 리빙랩 개념으로 진화시킨다. 새로운 비즈니스가 나올 것이다. 선진국도 모두 초고령화, 저출산, 지병, 양극화 등 마찬가지 고민이 있다. 기술은 있는데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아이디어가 없다. 우리나라가 먼저 비즈니스 아이템을 찾는 것이다.
-지능형 헬스케어 관련 사업은.
▲영유아 보육시설에 스마트디바이스를 도입한다. 향후 치매 노인 등 스스로 거동하지 못하는 사람을 돕는 솔루션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영유아, 유치원, 유아원, 보육원 등 아이들부터 시작한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다쳤을 때, 싸웠을 때, 우울할 때 등 심박수가 달라지는 것을 체크한다. 보육원 차에 아이를 방치하는 사고도 방지할 수 있다. 길가에서 헤매는 아동도 위치추적시스템(GPS)로 찾는다.
기술은 이미 있다. 민간에서는 돈이 안되고 규제가 있어 쉽게 뛰어들지 않는다. 공공이 먼저 들어간다. 규제샌드박스 허가받아서 기술적으로 안정성을 검증한다. 검증된 것부터 확대시킨다. 어느 정도 되면 민간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요양원까지 적용 가능하다. 기술로 안정화하고 비즈니스화 될 때까지 공공에서 끌어줘야 한다.
디바이스는 시중에 있는 것으로 하고 융기원 컨트롤타워에서 프로그램을 관리한다. 괜찮은 사업이라 판명되면 여러 기업이 달려들 것이다. 영유아 사업 플랫폼을 시작하면 여러 사업이 들어온다. 현재는 초기 단계지만 시장만 형성되면 다양한 비즈니스가 창출될 것이다.
-승차공유, 카풀 등 규제 관련 기득권과 신산업 간 다툼에 대한 생각은.
▲고르디우스 매듭처럼 해법이 있는 건 아니다. 정치적 리더십과 신뢰가 중요하다. 항상 합리적 해답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대부분 이슈가 그렇지 않다.
조셉마리 자카르라고 1800년대 프랑스 리옹에서 옷감 짜는 직조기술자가 있었다. 이 사람이 무늬가 있는 옷감을 직조기로 짜는 기술을 만들었다. 판자에 구멍을 뚫어 직조기에 올려놓고 구멍에 따라 기계적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방식이다.
자카르 직조기가 리옹에서 처음 나왔을 때 동료 직공들이 불을 질렀다. 일자리 없어진다고 마귀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진정이 됐다. 매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무늬는 기계로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되니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시장 파이가 커졌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거기까지 생각할 수 없다. 기술의 파괴적 혁신은 노동자 시야를 벗어난 영역이다. 그래서 혁신적 기업가가 필요하다. 정치는 타협점을 찾아줘야 한다. 기업가에게 혁신을 진작시키게 하고 노동자에게는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무작정 참으라고 하면 아무도 못참는다. 정치 존재이유가 그런 역할 아닌가.
-융기원 원장으로서 대학 교수로서 역할을 병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관이나 기관장 등 더 좋은 자리 가려고 한다는 시선도 있다. 반면에 전문 연구분야에서는 연구를 포기한거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은사님께서도 한창 연구해야 할 나이에 뭐하고 있는거냐고 물으시더라.
남들이 믿건 말건 난 연구자다. 행정은 할 줄도 모른다. 정치는 물론 공직도 할 생각조차 없다. 융기원에서는 보직수당만 받는다. 임기 끝나면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과학자나 정치인이라도 융기원에 와서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대학과 관료조직 경계선에서 일을 하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융기원 같은 곳이 많이 나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신뢰와 공감이 중요하다. 과학기술에 대해 지나친 불신과 부정적 생각, 지나친 과신이나 낙관적 생각 둘다 금물이다. 과학기술은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 능선능악이다.
선이냐 악이냐 결정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다. 그 방법론은 융합이다.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의 협업이다. 과학으로 저출산, 저성장, 난민, 환경 난제를 해결해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 결국 과학기술을 가지고 정해야 한다.
융합이라는 방법론에서 사회적으로 멀리보고 우리 다음세대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일본에게 다음 세대는 끌려다니지 않게 해야 한다. 과학자, 공무원, 법학자 서로 다르지만 융합해야 한다. 사회적 난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
◆정택동 원장은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까지 익산에서 다니고 19살 때 서울에 입성했다. 서울대학교 화학과 학사, 석사, 박사를 받았다. 서울대 정년보장교수직인 테뉴어를 받고 사회에 봉사하라는 권유로 2015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부원장으로 왔다. 지난해부터 공공기관으로 변신한 융기원을 이끌고 있다.
정 원장은 학부모에게 자녀 교수법을 자주 질문 받는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지 물음을 받는다.
그의 대답은 단호하다.
“인생에 로드맵은 없습니다.”
경험도 해보지 않은 것을 어려서부터 어떻게 알 수 있냐는 판단이다. 자소서를 쓰는지 자소설을 쓰는지 알 수 없다. 자신도 어렸을 때 꿈이나 희망을 몰랐다고 했다. 어른들이 물어보니까 대답하려고 대통령이나 과학자가 되겠다고 답하곤 했다. 대학입시 때 지원한 화학과도 사실 마감 10분 전에 넣었다고 털어놨다. 재수는 안 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는 아이들 교육 방침과 관련, 썰매를 끄는 개에 비유했다. 그 개들은 질주본능이 있어 내버려두면 아무데나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끈으로 묶어놨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부모가 할 일은 울타리를 대충 쳐주고 질주본능을 잃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간섭 말고 부모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입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미래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책임은 져야 한다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정리=김정희기자 jha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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