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본격 가동했다.
삼성은 최근 협력사들에 '일본산 소재부품 전 품목에 대한 90일치 이상의 재고 비축'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고 확보에 필요한 비용과 향후 해당 물량 재고는 삼성이 모두 책임진다는 조건이다.
이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가 확대될 것을 대비해 내린 결정이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나온 첫 조치다. 이 부회장은 엿새 일정의 일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이튿날인 지난 13일 긴급사장단 회의를 열고 비상 상황에 대비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협력사에 공문을 보내 일본에서 수입돼 삼성전자에 공급되는 전 자재의 90일 이상치 확보를 요청했다.
삼성은 안전 재고 확보 시한을 '이달 말까지, 늦어도 8월 15일 이전까지'로 못 박았다. 삼성은 그 이유로 일본의 수출 규제가 확대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이 구매팀장 명의로 발송한 공문에서 “최근 일본 정부가 한국으로 수출하는 반도체 소재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고, 추가로 '화이트 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한국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일본 업체의 한국향 수출 품목별 개별 허가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삼성이 우려하는 것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과 다른 완제품에 들어가는 전자부품·소재까지 규제가 확대돼 수입 및 완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은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재고 확보가 최우선인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비용을 삼성이 부담하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필요한 발주 물량이나 추가비용은 구매 담당자와 사전에 협의하고, 선적 지연 등이 예상되면 지원하겠다”면서 “재고 확보에 필요한 비용과 향후 해당 물량이 부진 재고로 남을 경우 삼성전자에서 모두 부담토록 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삼성전자가 협력사에 긴급 재고 확보를 요청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재고 확보에 드는 비용과 부진 재고까지 삼성이 모두 떠안겠다고 강조한 것은 그만큼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 파장이 상당해 비상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삼성 협력업체 고위 관계자는 “삼성이 90일치 재고 확보에 드는 추가 비용을 감수할 정도로 일본산 소재부품 확보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전 사업 부문으로 대비 체제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는 현재 3개 품목(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에 국한됐지만 우리나라가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 첨단소재, 항법 장치, 센서 등 무려 1112개에 이르는 품목이 일본의 수출 규제 영향권에 들어가기 때문에 전 산업계로 번지는 파장은 커지게 된다. 삼성 입장에서도 스마트폰, 가전 등으로의 여파가 확대된다.
일본은 이달 1일 첫 공표에 이어 지난 12일 한·일 양자 협의에서도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일본은 이를 위해 수출무역관리령 시행령을 개정해 오는 24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각의 결정 후 공포하고, 그로부터 21일이 경과한 날로부터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우리 정부는 8월 22일께부터 백색국가 제외 조치가 단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협력회사와 긴밀히 협조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차질없이 공급망을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
윤건일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