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화웨이가 자체 반도체 칩 개발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국 기업이 절대 강세인 데이터센터용 칩 개발 투자 계획을 밝히는가 하면 5G 모뎀 칩 출시도 앞두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 조치로 국내 반도체 업계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중국 '반도체 굴기'도 지속되는 양상이어서 주목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쿤펭컴퓨팅산업서밋' 행사를 열고 앞으로 데이터센터용 칩 개발 등 관련 인프라에 5년간 30억위안(약 5147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릭 수 화웨이 순환대표는 “화웨이의 데이터센터용 칩 '쿤펭'과 인공지능(AI) 칩셋 어센드(Ascend) 프로세서 혁신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쿤펭의 컴퓨팅 시스템을 만들면서 선도적인 IT 인프라를 구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화웨이는 지난 1월 데이터센터용 중앙처리장치(CPU) '쿤펭 920'을 처음 선보였다. 이 제품은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자체 설계했다. 64코어 기반으로 제작됐으며, 현재까지 초미세 공정인 7나노(㎚) 공정을 활용한다.
화웨이는 쿤펭 프로세서를 다양한 제품군으로 확대하며 데이터센터 CPU 시장에 진입한다는 전략을 추진한다. 현재 글로벌 데이터센터 CPU 시장은 인텔이 90% 이상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AMD도 데이터센터 CPU 시장에 도전하는 등 미국이 강세를 보이는 시장이다.
무엇보다 지난 5월 미국 정부의 고강도 화웨이 제재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반도체 자체 개발 의지를 재확인했다.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암(Arm)과의 협력도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설계자산(IP)을 판매하는 암은 미·중 무역분쟁 중 화웨이 제재에 동참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쿤펭920은 암 기반으로 설계된 프로세서다. 신형 칩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암이 개발한 IP 사용도 지속 늘려가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중국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암이 화웨이 제재 동참 의사를 밝혔지만 실질적인 제재가 진행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마치 대만 파운드리 TSMC가 중국 고객사 감소를 우려했지만 지난 2분기 동안 중국 쪽 매출이 크게 감소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전했다.
그레이엄 버드 암 이사회 의장 겸 최고운영책임자도 “중국 시장 투자를 계속할 것이며, 중국 기업과의 협력도 기대한다”며 중국 기업과의 협력을 시사한 바 있다.
데이터센터 칩 외에 화웨이는 5G 스마트폰용 칩 2종도 연내 출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5G 통합 모뎀칩 '기린 985'는 극자외선(EUV) 공정을 적용하며 올 하반기 공개될 예정이다. 일정대로라면 관련 시장에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5G 통합 칩셋이 된다.
화웨이는 지난 18일부터 이틀간 중국 푸젠성 샤먼시에서 열렸던 '2019마이크로반도체서밋'에도 참석했다. 이 행사에서는 업계 관계자 400여명, 전문가 200여명이 참석한 중국 내 최대 반도체 행사로 칩 설계, 생산, 장비, 투자계획 등을 논의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