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구비 부정이 단골뉴스다. 정부 과제 5만4000개 가운데 0.4%가 연구비 부정 문제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99.6%의 선량한 연구자들이 복잡한 증빙서류 처리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교통사고는 매일 평균 595건이었다. 자동차 2320만대의 0.9%에 해당된다. 정부가 다각도로 노력하고 시민이 참여한 결과 20년 전보다 30% 줄어든 결과다. 연구비 부정도 교통사고처럼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문제다.
문제는 연구개발(R&D)이 '비효율'이라는 것이다. 올해 20조5000억원인 정부 R&D비의 3배인 민간 부문까지 합하면 전체 R&D비는 약 85조원으로 추산된다.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4.5% 비율로 세계 1위 수준이니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효율 여부는 따져봐야 한다. 기술무역수지의 만성 적자가 문제다. 2017년도 기술도입액이 165억달러, 기술수출액이 118억달러로 47억달러 적자다. 그러나 그 비율인 기술무역수지비가 2010년에는 33%였지만 꾸준히 높아져서 2017년에 72%가 됐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2년에는 기술무역수지 흑자국이 된다. 통상 90%를 넘는 높은 겉보기 성격의 R&D 성공률도 단골 지적 사항이다. 반면에 산업 부문 과제의 사업화 성공률은 45% 안팎으로 적절한 수준이다. 이게 너무 낮으면 연구비 낭비지만 너무 높아도 목표가 낮은 것이니 문제다.
중소기업 위주의 '나눠먹기식 지원'이라는 비판도 있다. 정부 R&D가 독이니 직접 지원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민간 R&D 분야는 대부분 대기업이 투자한다. 이에 따라서 정부 R&D 지원은 대체로 열세에 놓여 있는 중소기업에 하는 것이 맞다. 지난해 우리의 소재·부품 수출은 3162억달러, 수입은 1772억달러로 1390억달러 흑자였다. 반대로 지난해 일본과는 소재·부품 수출 137억달러, 수입 288억달러로 151억달러 적자였다. 일본의 전략물품 통제에 있는 1194개 품목 가운데 13%인 159개는 대일 의존도가 크다. 이들 품목은 국산화가 불가피하다. 다행히 대부분의 나머지 품목은 수입처 변경이 가능하다. 이 경우 연간 17조원에 이르는 일본의 무역흑자는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소재·부품은 중소기업 주요 업종으로써 그동안 집중 투자가 주효했고,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 R&D의 높은 효율은 세계 5위 특허 강국에서도 확인된다. 한국 국제특허(PCT)가 4위인 독일의 90%로 좁혀졌다. 이 추세라면 3년 안에 독일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이후 양 위주 특허가 문제되면서 질 위주로 바뀌었다. 참고로 양으로는 미국을 따라잡은 중국 특허도 질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무선통신, 디스플레이, 가전 분야는 일본을 제치고 10년 이상 세계 1위다. 원자력·석탄화력은 세계 수준으로 기술이 자립했다. 안전성·경제성과는 별개로 기술 수준은 그렇다. 1500㎞에서 2m 표적에 명중하는 순항 미사일도 국내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 40여년 동안 과학기술에 집중 투자한 결과다. 이게 대기업 성과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정부 R&D로 가능성을 확인한 후 민간 투자로 이어졌다. 삼성 반도체, 현대 수소차, LG·SK 배터리가 그 예다. 인력 양성과 수출 지원도 정부가 했다. 이런 식으로 바이오헬스, 로봇, 미래차도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 R&D 효율이 낮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참여정부에서 자주국방을 위해 연평균 국방비를 8% 증액했다. 복지비는 10% 늘렸다. 지금은 장기 무역 침체와 기술 전쟁에 대비할 때다. 군자금인 R&D비의 10% 증액이 필요하다. 아직 우리 R&D비 규모는 미국·중국의 5분의 1,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 R&D 투자 비율도 경쟁국보다 낮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과 디지털전환, 에너지전환 등 혁신 성장을 위한 필수 투자다. 그 대신 과학·기술계는 연구 효율을 10% 향상시켜야 한다.
임춘택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 ctrim@ke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