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하는 기술 국산화는 끓어오르는 혈기만으로 대처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깊은 성찰 아래 산·학·연·관이 서로 욕심 부리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다 할 때 또 다른 국가 발전의 터닝 포인트로 작용하게 될 겁니다.”
이정익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실감소자원천연구본부장은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응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냉정한 판단 아래 면밀하게 상황을 검토하고 대응 계획을 공고히 하자는 신중론이다.
이 본부장은 지난 20년 국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 개발과 발전에 산파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디스플레이분야 정부 기술·예비타당성 조사 기획에도 다수 참여해 정책에도 밝다. 누구보다 이번 일본의 행태가 뼈아픈 사람이다.
이런 이 본부장은 첨단 분야 소재 관련 일본 수출 규제 기술 국산화에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부분의 기술을 국산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경제성도 극히 떨어진다”며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소재를 들여올 수 있다면 이 것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나라 전체에 기술 국산화 열망이 가득한데, 여기에 너무 매몰되면 도리어 산업 전반의 경제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출연연을 비롯한 산학연 역시 불필요한 분야에까지 욕심을 부리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기술 국산화는 장려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나라에서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수입해야 해 또 다른 일본 수출 규제사태를 부를 가능성이 있거나 외국 수입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확실하게 기술 국산화에 나서야 한다.
이 본부장은 이를 위해 현재 정부가 내놓는 수준보다 훨씬 깊은 소재 기술 국산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차근차근 진행한 조사로 5~10년 뒤를 내다보는 기술 개발 로드맵을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국산화에 대한 인기가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기술 개발은 애초에 1~2년 안에 끝날 일이 아니다”라며 “지금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혹시 조기 마무리 될지라도 지금의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연구개발(R&D)를 지속해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 성공하면 우리나라가 산업과 과학기술계가 일본의 공격 이전보다 훨씬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일본의 공격을 기회로 잘 활용해야 한다”며 “이 경우 꼭 필요한 기술 분야 기술 자립, 한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하드웨어(HW) 분야 발전을 이루고 산학연 역할도 재정립해 비효율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