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에는 재미있는 형성자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상말 언(諺)'이다.
언(諺)은 '말씀 언(言)'과 '선비 언(彦)'이 합쳐진 말이다. 이 두 글자의 의미를 합치면 결국 선비의 말이 된다. 그러나 실제는 상스럽다는 뜻풀이가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
한글을 낮잡아 부르던 말인 '언문(諺文)'이라는 표현에도 이 글자가 쓰인다. 물론 일상에 쓰는 말이나 속담이라는 뜻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긍정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더 크게 자리 잡은 듯하다.
최근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서 '언(諺)'이라는 한자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선비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재물을 탐내지 않고 의리와 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학식 있는 사람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로 해석하고 있다.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기본 교양을 갖춘 상식 수준 이상의 사람' 정도로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언(諺)이라는 한자에 상스럽다는 뜻이 담긴 걸 보면 일반인 간에도 주고받는 과정이 좋지 않거나 많아지면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
요즘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막말' 논란을 보면서 언(諺)에 담긴 뜻을 되새겨 보게 된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한다.
옳은 말이라도 한마디 한마디가 얄미워서 끝까지 듣기 싫은 말이 있고, 우스개 삼아 건성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도 가슴에 꽂혀 자신을 뒤흔드는 말이 있다. 말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 해도 오해 소지가 있거나 상대가 받아들이기 거북하다면 잘못된 것이다. 실제 말 한마디로 인해 일을 망치거나 관계를 잃는 것은 물론 비난까지 받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오가는 막말은 이런 안 좋은 예의 끝판을 보는 것 같다.
그 대상도 동료의원은 물론 대통령, 심지어 국민이든 상관없다. 생각이 다르거나 자신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면 여지없다.
요즘은 '친일' 프레임으로 서로를 몰아친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가장 잘 먹히는(?) 이슈라고 여기는 것 같다.
꼬투리라도 보이면 여지없이 물고 늘어진다. 명확한 근거나 논거도 없다 보니 언성을 높이고, 막말을 쏟아내게 된다. 오해의 소지도 상관없고 상대가 받아들이기 거북할수록 더 거칠어진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실수가 뒤따르게 된다.
이 실수는 또다시 상대방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이어 막말의 향연이 되풀이된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뫼비우스의 띠, 돌면 돌수록 회전 반경이 커지는 회오리 같다. 본질은 간 곳 없고, 결국 막말만 남는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이 되어 삶을 결정짓는다고 했다.
지금 내뱉는 막말이 곧 자신의 운명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정치인에게는 내년 4월 총선이 그 시점일 수 있다. 막말로 유명하던 정치인들의 지금 상황을 돌아보면 답은 곧 보인다.
말(言)을 할 때 상스럽지(諺) 않은 선비(彦)의 품격을 찾길 기대한다.
요즘은 바다 건너에서도 막말이 날아온다. 그쪽도 마찬가지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