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분야 전용회선 사업에서 통신사 간 담합은 수년에 걸쳐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적발된 12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 이보다 많은 담합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담합은 입찰제도 근간을 뒤흔든다. 경쟁 제한은 물론이고 불법 방식에 의해 국가 예산 지출을 늘린다는 점에서 불공정거래 중 가장 악의적 행위로 간주된다.
무엇보다 담합 근절을 위한 통신사 자정 노력과 재발 방지책이 요구된다.
일각에서는 공공분야 입찰 제도에 담합을 부추기는 문제 요인은 없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낙찰사·들러리사·불참사 사전 합의
통신사 간 합의에 따라 특정 낙찰사를 미리 결정하고 경쟁사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을 채택했다. 경쟁 불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가 하면 의심을 피하거나 유찰을 막기 위해 들러리를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도 동원했다.
2015년 행정안전부 '국가정보통신망 백본회선 구축사업'을 앞두고 KT와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등 3사 실무자는 사업공고(4월) 두 달 전부터 KT 대전지사 회의실과 커피숍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만나 담합을 논의했다.
3사는 기존 사업자 KT가 낙찰 받을 수 있도록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는 사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반대 급부로 같은 시기 진행된 '국가정보통신망 국제인터넷회선 구축사업(1분류·2분류)'에서 기존 사업자인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가 1분류·2분류 사업을 각각 수주하도록 KT가 들러리로 입찰에 참여하기로 했다.
합의 이행 대가로 KT는 '국가정보통신망 백본회선 구축사업'에 필요한 재해복구망 중 일부 회선을 LG유플러스에서 임차, 이용료(약 40억원)를 지급했다. 이어 LG유플러스는 회선 중 일부를 SK브로드밴드로부터 임차해 이용료(약 20억원)를 지급했다.
또 '국가정보통신망 백본회선 구축사업'이 KT 단독입찰로 유찰될 경우 사업기간 준수 등 문제를 우려, KT가 전화로 세종텔레콤에 들러리 참여를 요청했다.
◇조직적 담합, 관행으로 굳어져
이 같은 방식은 같은 해 6월 공고된 미래창조과학부 '기반망 회선사업자 선정 용역'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2015년 3월~5월 통신 3사 실무자는 광주시내 음식점 등지에서 만나거나 유선으로 연락하며 기존 사업자 KT가 낙찰 받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참여하지 않는 대신 KT가 회선 임대 방식으로 이용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대가를 제공했다. KT 단독입찰에 따른 유찰을 막기 위해 세종텔레콤이 들러리로 참여했다.
2016년 '병무행정 국가정보통신서비스 구축사업'에서는 담합 방식에 변화를 줬다. 기존 사업자 KT가 낙찰을 받도록 LG유플러스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단 SK브로드밴드가 1차 입찰에 단독 참여, 입찰을 유찰시키고 2차 입찰에서는 들러리로 참여해 최종 KT가 수주하도록 했다. 외부 시선을 의식한 행위로 풀이된다.
2차 입찰에서 SK브로드밴드는 가격 점수에서 KT에 0.0377점 앞섰지만 기술 점수에서 1.3178 뒤져 총점 1.2801점 차이로 탈락했다.
SK브로드밴드가 기술 평가 점수를 낮게 받도록 제안서를 부실하게 작성해 제출했다는 게 공정거래위원회 판단이다. 합의 이행 대가로 KT는 SK브로드밴드에서 6개 회선을 임차, 2년간 이용료 6억원을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외에 적발된 모든 사업에서 이 같은 담합이 관행처럼 자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담합, 입찰제도 근간 흔든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9조는 계약·협정·결의 등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입찰이나 경매에서 낙찰자나 투찰가격, 낙찰가격 등을 사전에 결정하는 행위가 포함된다.
이 같은 담합은 시장 경쟁제한성을 높인다. 원활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으면 낙찰 가격이 높아진다.
최종 낙찰가가 높아지면 발주처가 예산을 절감할 수 없다. 개별 사업자에 국민 세금이 많이 지출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담합이 적발된 12개 사업의 경우, 예가(예정가격) 대비 투찰률 평균이 97.32%에 이른다. 100원에 사업을 추진하면 97원에 수주를 했다는 의미다. 일반 정보통신사업 투찰률이 70~80% 수준인 것과 현저하게 비교된다.
통신사 관계자는 “담합은 향응 제공 등과 달리 국민 세금 지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큰 피해를 유발한다”면서 “오랜 기간 관행으로 존재해온 만큼 이번을 계기로 통신사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담합이 전적으로 통신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과거 낙찰률을 근거로 한 신규 사업 예가 선정, 정보통신사업 60% 가격 하한선 등 생태계 수익을 고려하지 않은 불합리한 입찰제도가 통신사 담합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공공 전용회선 사업 방식 재검토 필요성도 제기된다. 공공 전용회선 사업은 통신사가 망을 구축하고 발주처는 이를 일정 기간 임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재 서비스 제공사는 다음 사업에서 탈락할 경우 매몰비 발생 등 이슈로 사업 수주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담합도 불사하는 이유다. 매몰비 보전 등 근본 해결책이 요구된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