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반도체 관련 3개 핵심 소재의 대 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하더니 결국 우리나라를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번 사태는 일본의 자국 기업 피해가 예상되는데도 치밀하게 진행된 만큼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소재는 단지 우리 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전자 조립 산업의 공급망과 연결돼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단기로 볼 때 우리나라 경제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일본산 소재·부품, 화학물질 등을 수입해 쓰던 기업은 대책 마련에 분주하고, 이번 기회에 소재 공급처 다변화와 국산화 노력을 하고 있다. 정부도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대응해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 총력전을 선언했으며,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소재 기술은 단기간에 극복하기 어려운 분야며, 깊은 기초과학 연구가 필요하다. 소재는 기초화학에 기반을 두고 공정 노하우나 경험을 쌓은 뛰어난 엔지니어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시장에서 성패가 좌우되는 분야로, 투자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특히 반도체 소재는 중요성과 기술에 비해 사용량이 많지 않고, 설령 반도체 공정에 적합한 소재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이를 평가하는데 걸리는 노력과 시간이 만만치 않으며, 수익성이나 사업성에서도 문제가 될 여지가 많다. 이에 따라 정부 지원은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 미래를 위한 장기 계획으로 접근해야 하며, 수요 대기업과 중소 공급 기업 간 원활한 협업 모델도 절실한 상황이다.
사실 제조업 위기가 일본의 무역 규제로 인해 급작스레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누적된 문제로, 단지 수출 규제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것뿐이다. 돌아보면 우리나라 제조업은 정부의 '수입 의존-수출 확대 정책'에 힘입어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보다 수출을 더 늘리는 데 집중해 왔다. 제조업 생산에 투입되는 수입 자재 비중은 50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지만 수출 비중은 크게 증가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실제로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자재를 국산화하려는 노력보다 새로운 물건을 더 많이 수출하는 쪽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작동해 왔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이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무역전쟁과 환율전쟁으로 불안한 세계 경제에 대응해 각국 정부가 자국 내 고용 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추진해 온 선택과 집중에 의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하이테크 기술 위주 성장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에 일본이 수출 제재를 가한 세 가지 제품은 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드 등 반도체 소재 부품이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모두 화학 기술과 관련이 있다. 이를 생산하는 공장은 화학혼합물을 섞어 만드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굴뚝산업에 가깝다. 이번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너무 단기 성과에 치우쳐서 기초산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관련 현장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그런데도 화학·소재 산업은 환경 규제와 전통산업이라는 인식 아래 각종 정책에서 소외돼 왔다. 산업의 근간이 되는 소재기업과 뿌리산업 현장은 아직 낙후돼 있는 곳이 많다. 이를 위해 4차 산업혁명, 스마트팩토리 등이 회자되고는 있지만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맞아 제대로 된 준비를 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불안한 경제 상황을 극복하고 완전한 기술 독립 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미흡한 기초산업 분야에 대한 장기 및 체계화한 지원과 지속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만 한다. 일본의 기초산업은 일본 경제산업청의 지속 지원과 모노즈쿠리로 대변되는 일본 장인정신에 기반을 두고 세계 제일의 기술 수준을 보유하게 됐다. 우리도 〃무조건 일본 비판을 하기에 앞서 일본의 강점을 수용하고 우리가 맞닥뜨린 환경에 대해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일본의 수출 제재를 시발점으로 소재 국산화 열의가 가득 찬 지금이야말로 제조 산업 기초부터 다시 보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적기다. 그동안 성장에만 몰입돼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기초산업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기본으로 돌아가서 기초 과학에 더 많이 투자해 연구개발(R&D) 예산 비중이 높은 데도 '원천 기술'이 많지 않다는 오명은 벗었으면 한다.
김정하 티라유텍 대표이사 jason@thiraut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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