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방송통신위원회 행정소송 1심에서 법원은 엄격하게 법조항을 해석함으로써 해외 콘텐츠 사업자(CP)가 '인터넷 접속경로(라우팅)를 변경'한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망 품질 유지 의무는 CP가 아닌 통신사(ISP)에 있고 라우팅 변경은 CP 권한일 뿐 아니라 설사 그로 인해 이용자 피해가 발생했더라도 심각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이번 판결은 규제 공백 영향이 크며 법원도 입법 미비를 여러 차례 인정했다. 사실상 규제 공백 해소를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해외 CP 행위가 국내 이용자 피해를 유발한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입법 등 대책 마련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형법 적용 대상'···보수적으로 판단한 법원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은 '원칙을 보수적으로 해석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법원 재량을 발휘하기보다는 법조문을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피규제자(페이스북) 이익을 보호한 것이다.
법원 스스로 “이 사건 쟁점조항은 그 위반행위가 형법 적용대상도 된다”면서 “따라서 법조문을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피규제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 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법원은 일단 페이스북이 접속경로를 변경했고 이 때문에 이용자 피해가 발생한 점은 인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접속경로 변경 후 페이스북 응답속도는 SK브로드밴드가 29밀리세컨드(ms·1000분의 일초)에서 130ms로 네 배 이상 증가했고 LG유플러스는 43ms에서 105ms로 갑절 이상 늘었다.
접속경로 변경으로 응답속도가 느려진 약 6개월 동안 SK브로드밴드 고객센터에 접수된 불만 건수는 1857건으로, 직전 같은 기간 31건보다 약 60배 급증했다.
그러나 법원은 규제를 위한 법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페이스북에 죄가 없다고 봤다.
방통위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제42조 제1항 등에서 규정한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가입·이용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행위'를 적용해 페이스북 라우팅 변경이 위법하다고 본 반면에 법원은 서비스 이용이 지연되거나 이용자 불편이 초래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용을 제한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전기통신사업법 제50조(금지행위) 제1항 제5호 후단을 해석하면서도 페이스북 라우팅 변경이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해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시스코,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 외국 논문,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기준 등과 비교할 때 응답속도 130ms는 크게 느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현실과는 큰 괴리
법원이 법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판결 결과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일상생활이나 산업 현실과는 작지 않은 괴리가 발생한다.
법원은 페이스북 응답속도가 평소보다 몇 배 느려졌음에도 이용자가 불편을 느끼는 정도이지 서비스 이용을 제한할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그러나 세계에서 통신 속도가 가장 빠른 국내 환경을 고려하면 이정도 지연은 심각한 장애로 볼 여지도 있다.
고객센터에 접수된 불만 사례를 보면 '페이스북을 아예 볼 수 없다' '너무 느려서 동영상 재생이 안 될 정도' '페이스북만 안되고 사진도 안 뜬다'는 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이용이 불가능한 고객도 상당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통신사 관계자는 “통신사는 조금만 인터넷 속도가 느려져도 고객 불만이 빗발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CP는 동일한 상황인데 '불편한 정도'라고 넘어가는 건 이중잣대”라고 말했다.
법원이 'SK와 LG유플러스가 해외 전송망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면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한 이용자 불편이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것은 망 투자비용 분담 이슈와 양면시장 개념 나아가 망 중립성 원칙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법원 논리를 극단으로 밀고가면 해외 CP는 한국 내 캐시서버(원 서버의 복사본)를 둘 필요가 없고 모든 트래픽을 국내 통신사가 해외 현지 서버로부터 끌고 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는 '비대칭트래픽 유발자부담'이라는 글로벌 접속 원칙과도 어긋날 뿐 아니라 통신망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논리다. 해외 CP는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고도 망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어서다. 양면시장 원리에 따라 CP도 망 투자비용 분담 주체 중 하나다.
망 중립성 원칙과도 일부 충돌한다. 국내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과 합리적 트래픽 관리 기준에 따르면 트래픽 증가는 통신사가 망 고도화를 통해 해결하는 게 원칙이지만 CP도 통신망의 공평하고 효율적인 관리와 활용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통신사 관계자는 “법원이 인정했듯이 대형 CP 역시 라우팅 변경 권한을 보유했고 이에 따라 망 품질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CP가 라우팅을 변경함으로써 통신사 통제를 벗어났는데도 통신사가 망 품질을 책임져야 한다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CP도 망 품질 책임' 입법 필요
법원은 판결문에서 법과 제도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법원은 “인터넷 이용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정보와 의견을 교환할 수 있고 이는 CP가 있음으로써 고양된다”면서 “CP 법적 책임에 관해 명확한 규정이 없는 이상 이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언급했다.
또 “접속경로 변경 등으로 접속속도가 저하되어 전기통신서비스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하는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명문의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입법 필요성을 지적했다.
방통위 제재에 대해서도 “접속경로 변경으로 많은 이용자에게 피해가 발생해 이에 대한 제재 필요가 절실했다고 하더라도 추가적인 입법을 통해 명확한 제재수단을 마련하지 않았다”면서 입법 미비를 다시 한 번 꼬집었다.
국내 이용자가 피해를 입었음에도 법 규제 공백으로 처벌이 힘들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입법 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에는 유민봉·김경진·변재일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세 건의 망 품질 유지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세 법안 모두 일정 기준을 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CP에도 망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유민봉 의원은 정당한 사유 없는 '서비스 품질 저하 행위'를 금지행위로 규정했다.
법원이 법 조항과 용어를 엄밀하고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 만큼 입법 과정에서 이런 고민을 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이용제한'과 '이용지연·이용불편'을 분명히 구분했다. 또 이용자 이익의 '현저히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을 요구했다. 응답속도가 몇 ms 이상일 때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지 규정할 필요가 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