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있은 일이다. 해마다 입학생이 줄더니 급기야 정원 미달 사태가 빚어졌다. 말썽꾸러기들만 입학했고, 학습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40%를 오르내리던 취업률은 10%대로 곤두박질쳤다. 대학 진학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 무렵 이 학교는 '청소년비즈쿨'로 선정돼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금으로 '무한상상실'을 마련해서 학생들이 마음껏 이용하게 했다.
그러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즈쿨 동아리 학생들이 밤마다 무한상상실에 모여 뭔가를 했다. 밤 10시가 넘도록 불은 꺼지지 않았다. 시나브로 학생들 표정이 밝아졌고, 각종 경진대회에 나가 온갖 상을 받아 왔다. 토요일에는 인근 중학생들에게 코딩을 가르치기도 했다. 일류 대학교 진학생도 생겨났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최근 3, 4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 학교 교장이 청소년비즈쿨 워크숍에서 성공 사례로 발표했다. 청소년비즈쿨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저변확대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이다. 창업진흥원이 매년 약 500개 초·중·고등학교 대상으로 운영한다. 비즈쿨로 선정되면 처음엔 학부모들이 반대한다. 그런데 반 년쯤 지나고 나면 학생들이 좋아하고, 교사들도 좋아하고, 학부모들도 좋아한다.
비즈쿨에는 특수학교도 약 20개 포함됐다. 경기도 안산시 한국선진학교의 경우 비즈쿨 지원금을 이용해 창업동아리를 지원하고 기업가 정신 특강을 한다. 교사, 학부모, 학생이 함께 창업도 했다. 학교에서 누룽지를 만들어 팔고 있다. 이천 쌀을 가마솥에 넣고 누룽지를 만든다. 소비자 반응은 매우 좋다.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라고 한다. 선진학교는 얼마 전 충남 천안시 나사렛대에서 특수학교 창업 캠프를 열기도 했다.
육군본부는 최근 '2019 육군 창업 경진대회'를 열었다. 짬짬이 창업을 준비해 온 약 700개 팀이 실력을 겨뤘다. 8월 21일에는 대전시 신탄진에서 서욱 참모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시상식을 열었다. 상위 3개 팀이 총장 앞에서 발표를 했다. 수준이 기대치를 한참 웃돌았다. 대상 수상자는 청소년비즈쿨 출신이었다. 나중에 창업진흥원 직원이 카카오톡으로 알려줬다. '비즈쿨 덕분'이라며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했다.
창업진흥원이 올해 육군 인사사령부와 협약을 맺고 육군 장병 대상으로 진행하는 온라인 창업 교육에 장병들 반응이 매우 뜨겁다. 박성민 집닥 대표가 강사로 나선 31사단 특강 때는 장병들 질문이 쇄도, 1시간으로 예정한 멘토링 시간을 3시간으로 늘려야 했다.
창업진흥원은 연간 약 4000개 창업기업을 지원한다. 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22가지나 된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오르고 일자리 창출이 시급해지면서 창업기업에 대한 사업화 지원에 관심이 모아진다. 지난해 예비 창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신설했다.
각종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집행하는 기관 입장에서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일자리 창출이 아무리 시급해도 창업 저변 확대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즈쿨을 포함한 저변 확대 프로그램은 당장 창업을 유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길게 보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길 기대하지만 이보다는 젊은이들한테 적극 살아가는 요령을 알려주는 측면이 더 강하다.
비유하면 창업 저변 확대는 미래를 위해 씨를 뿌리는 작업이다. 지금 꾸준히 씨를 뿌려야 훗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도전정신이나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청소년비즈쿨 등 창업저변확대 프로그램은 소중한 씨앗이다. 아무리 급해도 훗날을 위해 씨앗 뿌리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창업진흥원은 최근 양지파인리조트에서 '메이커 가족캠프'를 열었다. 초·중학생들이 2박 3일 동안 부모님과 함께 메이커 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부모님과 함께 아이디어를 다듬어서 제품으로 만드는 경험을 했다. 행사가 끝난 뒤 어느 학부모는 “언제 또 캠프를 여느냐?”고 물어 왔다. 비즈쿨 창업 캠프, 메이커톤, 군 장병 온라인 창업교육 등을 통해 좀 더 많은 젊은이들이 적극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체험했으면 좋겠다.
김광현 창업진흥원장 khkim@kise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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