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최종심에서 2심 재판을 모두 다시 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쟁점이 된 말 3마리 구입액과 영재센터 지원액을 모두 뇌물로 인정했고,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과 대가성도 존재한다고 봤다. 이 부회장은 2심 때보다 인정된 범죄 혐의가 늘었기 때문에 형량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재판 절차가 남았음에도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반성의 뜻을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원,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징역 20년에 벌금 200억원을 선고한 최씨 2심 재판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무죄 부분은 확정하고 유죄 부분만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공직선거법 제18조에 따라 대통령이 재임 중 직무와 관련해 형법 제132조(알선수뢰)에 규정된 죄를 범할 경우 다른 죄와 분리 선고해야 한다는 법리적인 오류를 지적했다. 공직자의 뇌물죄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 제한과 관련되기 때문에 반드시 분리해서 선고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유죄가 인정된 뇌물 혐의에 대해 다른 범죄 혐의인 직권 남용 및 강요 혐의 등과 구별해 따로 선고하게 된다. 각 혐의를 분리 선고할 경우 형량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 부회장 재판과 관련해서는 2심에서 인정하지 않은 뇌물과 승계 작업을 모두 인정했다.
대법원은 삼성이 최씨 측에 제공한 말 세 마리와 관련해 법률상 소유권이 없어도 점유하고 반환을 요구받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사용 처분 권한을 갖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 판례 취지상 뇌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2심에서 말 구입액이 아닌 말 사용료만 뇌물로 인정된다는 판단을 뒤집고 말 구입액인 약 34억원을 뇌물로 판단했다. 또 이 부회장 2심 판결에서 뇌물로 인정되지 않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뇌물 혐의액 16억원도 뇌물액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뇌물 액수가 늘어나는 만큼 횡령 액수도 함께 늘어난다. 재판부는 삼성에 경영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했고, 대가 관계가 인정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측이 제공한 뇌물 액수가 약 50억원 늘어나게 되면서 이 부회장 역시 형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부회장의 재산 국외 도피와 국회에서의 위증 혐의는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삼성전자는 판결 직후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저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삼성은 최근 수년간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미래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재계는 삼성의 이번 입장 발표를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이 2016년 하반기 국정농단 의혹 사건이 시작된 이후 공식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파기 환송으로 재판 절차가 남았음에도 '반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느끼는 위기감이 심각하기 때문에 '위기를 돌파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입장문을 낸 것은)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아예 도태될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제대로 맞서서 이겨낼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라면서 “리더십 위기 등으로 3년여 시간 동안 미래 준비를 못했는데 더 이상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절박감에 반성과 재발 방지를 다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