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의 '국내 대리인 제도'가 부실하게 운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행 6개월 동안 고객 응대를 위한 자동응답시스템(ARS)조차 갖추지 않은 기업도 존재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당국의 규제가 지금보다 실행력을 높이고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리인 제도는 우리 국민이 개인정보 관련 고충 처리를 위해 글로벌 기업과 언어 등 어려움 없이 편리하게 연락하고, 개인정보 침해 사고 발생 시 규제 집행력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됐다.
10일 통신 및 인터넷 업계에 따르면 구글 개인정보 보호 국내 대리인 디에이전트는 이달 초까지 e메일로만 개인정보 처리 관련 문의를 접수했다. 이는 외부에 개인정보보호 자문위원회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네이버 및 카카오는 물론 구글과 동일한 법 적용을 받는 페이스북, 애플, 이베이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의 응대다. 대체로 신속한 피드백을 받는 데 한계가 있다.
페이스북 국내 대리인은 ARS 시스템을 갖췄다. 애플은 대리인 소속 직원이 직접 전화를 받아 응대한다. 지마켓, 옥션 등을 운영하는 이베이는 한국에서 개인정보보호 전담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구글은 본지의 취재가 시작되자 9일 늦은 오후 시간에 관련 시스템을 업데이트하고 ARS 응대를 시작했다. 국내 인터넷 기업 관계자는 “기본 시스템도 갖추지 않은 상태”라면서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대리인 제도의 궁극적 목적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즉각 민원 대응”이라면서 “이는 글로벌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따를 것이 아니라 기업이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법 시행이 반년 정도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응대 접근성, 신속처리 등 법 취지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리인 제도뿐만 아니라 인터넷 역차별 해소, 과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선 글로벌 기업을 향한 법·제도의 큰 틀이 실효성을 담보하는 차원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글로벌 기업을 국내법 안으로 끌어들이려는)제도를 부분적으로 시행하면 (부실 논란 등) 실효를 담보하기 어렵다”면서 “국가 분쟁을 예방하는 상호주의에 입각해 큰 틀에서 집행력 높은 법 체계를 갖추는 쪽으로 정책을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리인 제도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올해 3월 19일 시행에 들어갔다. 매출 1조원 이상(글로벌 전체 기준)이거나 △국내 정보통신 분야 매출액 100억원 이상 △개인정보를 저장·관리하는 이용자 수가 일평균 100명 이상 등에 해당하는 글로벌 기업이 적용 대상이다.
대리인은 글로벌 기업의 개인정보보호 책임자 업무도 대신한다. 글로벌 기업은 통상 영업의 경우 현지 법인, 서비스 핵심 업무는 본사가 각각 담당한다. 이 때문에 개인정보처리 업무와 관련해 로컬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기 어렵다. 대리인 제도는 이를 보완하자는 취지다.
김시소 게임/인터넷 전문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