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2019년.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계는 100년 전 우리 민족이 맞닥뜨렸던 것과 흡사한 격랑에 흔들리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과 격화하는 보호무역주의, 일본 수출규제 조치로 인한 파고가 높다. 우리 산업계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주력산업 핵심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비롯해 미래 성장동력 분야에서 '기술독립'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전자신문은 창간 37주년을 맞아 기존 주력산업과 미래 성장산업의 핵심 기술독립 의의와 방향을 면밀히 짚어보고자 한다. 기술독립은 글로벌밸류체인(GVC) 상에서 고립된 산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대에 맞는 자생 능력과 기술 자주권을 갖춘 산업 생태계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우리나라 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성윤모 장관과 공학·기술 발전을 도모하는 한국공학한림원 권오경 회장과의 특별대담을 통해 '기술 독립을 위한 산업 정책과 연구계의 과제'에 대한 고견을 들어봤다.
-사회(양종석 전자신문 미래산업부장)=최근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기술독립'이 과제로 떠올랐다. 실물경제와 산업정책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기술독립 중요성과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성윤모(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일본 수출규제 조치는 핵심 품목을 해외에 지나치게 의존해왔던 과오를 돌아보고, 소재·부품·장비 산업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2000년대 들어 생산 3배, 수출은 5배 증가하는 등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높은 의존 구조와 범용 기술 중심 확보 전략으로 한계에 직면했다. 지난 8월 5일 발표한 대책은 100대 핵심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자체 기술력과 공급 안정성 확보에 중점을 뒀다.
소재·부품·장비는 주력산업 공급망 안정화와 차세대 산업 성장의 필수 기초 요소다. 기술 확산과 외부 효과가 큰 중요한 산업인 만큼 우리 산업이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도록 기본기를 갖추고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제조업 발전을 위한 경쟁력을 확충하겠다는 의미다.
글로벌밸류체인과 세계 경제가 촘촘하게 엮인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기술독립'보다는 '산업 구조와 경쟁력의 안정화'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기술을 자립화하고 혼자 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대변화의 시기가 도래했다. 우리 산업도 양적 발전 단계에서 벗어나 주력 산업을 어떻게 고도화하고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신산업을 어떤 구조로 가져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제조업과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핵심 소재·부품·장비 자체 기술력 확보는 다소 시간이 걸리고 어렵더라도 꼭 가야할 길이다. 핵심 전략 품목은 궁극적으로 자체 기술을 확보해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개발 역량이 부족하거나, 공급 안정성이라는 시급성에 비해 개발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면 보다 개방적 방법으로 해외 우수 기술을 확보하는 것도 효율적으로 공급망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우리 산업계는 과거 수많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저력과 경험을 갖고 있다. 실물경제 주무장관으로서 긴 호흡으로 냉정하고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엄중한 책임감을 갖고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갈 것이다. 경공업과 중화학, 그리고 정보기술(IT) 산업 근저를 이루는 소재·부품·장비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기적 부분이 아니라 꾸준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부분이다.
-연구계도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많은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술독립 의미는 무엇일까?
▲권오경(한국공학한림원 회장)=기술독립이 꼭 필요하지만 모든 기술 독립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매우 전략적인 기술독립 로드맵을 구상해야 한다.
우리나라 글로벌 대기업은 세계 수백개 협력사에서 소재·부품·장비를 공급받아 제품을 완성한다. 세계 공급망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국내 대기업 경쟁력 핵심이다. 국산화 제품 품질이 담보되지 않거나, 충분한 물량을 제 시간에 확보할 수 없다거나, 해외 기업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면 국산화 실익은 없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도태돼 간다면 기술독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론 이번 사태와 같이 핵심 소재나 부품이 외부 요인으로 인해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기 때문에 중요한 품목에 대해서는 전략적으로 국산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산화 품목은 수요기업과 긴밀히 논의해 정해야 하며 참여 소재·부품·장비기업 연구개발 능력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산업계 수요와 미래 투자 방향을 고려해 정교한 국산화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소재·부품·장비기업도 국산화를 넘어 글로벌 '넘버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영속할 수 있다.
-정부에서도 기술독립을 위해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과 연구개발 투자 확대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이번 정책은 특히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뒀나?
▲성윤모=대책을 준비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고 기술개발과 생산 사이 공백을 지원하는 것이다. 소재·부품·장비 성공적인 개발을 위해서는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간 관계가 기대보다 못 미친 부분이 있다. 아울러 공급 기업은 시제품 제작비 등 부담, 수요기업은 생산라인 개방 등 기회비용과 신뢰성 위험부담 등 시장실패 영역이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국내에 자체 공급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요인이다.
이번 대책은 기획부터 기술개발, 실증·양산 테스트, 생산·구매 단계까지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모델에 중점을 뒀다. 수요-공급기업 간 수직적 모델과 수요-수요기업 간 수평적 모델을 중심으로 4가지 모델을 구상했다. 앞으로 더 다양한 모델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참여하는 기업에 대해 범부처 차원에서 입지, 세제, 규제특례 등 강력한 패키지로 활성화를 지원한다.
아울러 기술개발과 생산까지 단절이 없도록, 화학·섬유·금속·세라믹 등 4대 분야 핵심 품목에 대한 실증지원을 위해 테스트베드를 확충하고 1000억원 규모 신뢰성보증 신설을 통해 수요-공급기업을 강력히 연계할 예정이다.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규제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우려가 높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으며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권오경=현재 한국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의 급격한 성장이 우리 입지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약 170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우리가 가진 한정된 자원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 전반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래기술 경쟁력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중국이 세계 인재를 흡수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 지속적으로 창의적 인재를 공급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대학과 정부 출연연구기관은 7~8년 이후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면서 우수한 창의적 인재를 키우고, 산업체는 5~6년 이내에 생산할 기술을 개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방식으로 우수한 창의인재를 양성할 뿐만 아니라 미래기술을 집중적으로 탐구해 산업체로 이관한다면 중국과 격차를 유지하거나 벌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은 예타 면제 등 전례에 없던 방식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일본 수출규제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하지만 그러나 소재·부품에 장비를 포함한 소재·부품특별법 제정 등 산업부가 이미 추진하던 대책과도 겹친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 정책과 차별화 된 부분은 무엇인가?
▲성윤모=이번 대책은 크게 3가지 측면에서 과거와 차별화된 특징이 있다. 첫째,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 공급망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100대 핵심 품목 공급안정성 확보에 중점을 두고,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모델 구축을 강력 지원한다. 그간 수요-공급기업 사이에 기술전략 공유, 구매조건 협력 등 부분에서 긴밀한 관계가 기대보다 못 미쳤다. 이번 대책에서 기획부터 기술개발, 실증·양산 테스트, 생산·구매 단계까지 수요-공급기업간 협력모델에 자금, 세제, 입지 등 종합 패키지 지원을 추진한다.
둘째, 자체 기술 확보를 대폭 확대하면서 인수합병(M&A), 해외기술 도입, 투자유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핵심기술을 빠른 시간 내에 확보하도록 지원한다. 해외기업 M&A를 위해 2조5000억원 이상 금융이 공급되도록 지원한다. M&A 법인세 세액공제, 해외 전문 인력 소득세 공제 확대 등 해외 우수 기술과 기술인력 확보 노력을 강화했다.
셋째,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추진을 위해 경쟁력위원회를 신설하고 특별회계를 설치한다. 소재·부품·장비특별법을 20년 만에 상시법으로 전면 개편한다. 경쟁력위원회는 이번 달부터 범 부처와 산업계가 협력해 본격 가동한다. 특별법은 장비를 포함해 기업육성과 산업 경쟁력 강화로 범위를 확대하고, 특화전문기업 육성, 테스트베드 기반조성, 인력양성, 협력모델 강화 등 대상, 방식,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한다.
-그동안 소재부품 자립화와 국산화 구호가 나온 지 수십년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민관 R&D 투자 규모가 매년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미진했던 부분을 교훈 삼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권오경=1980년대부터 한일 무역적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소재·부품 자립화와 국산화가 중요한 화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재·부품 개발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장기간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
반도체 분야는 1992년부터 2001년까지 G7 연구개발사업으로 대기업, 중소기업, 연구소, 학계가 협력해 대규모 국가 연구개발사업을 수행했다.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자립화도 진행했다. 그 결과 국내 메모리 반도체산업이 세계 1등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그 이후 반도체 분야의 포스트(post)-G7 연구개발사업을 계획했으나 '반도체 산업은 대기업이 잘 하고 있으니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에 부딪혀 좌초되고 말았다.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 시장 수요자와 공급자 요구사항을 기반으로 정부는 장기적인 연구개발 목표를 세우고,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을 지원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뀐다 하더라도 정부는 당초 계획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번 소재·부품·장비 대책에 많은 것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컨트롤타워를 비롯해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갈 체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권오경=덧붙이면 우리나라에도 국가 최고기술경영자(CTO)가 있으면 좋겠다. 산업부나 과기부 장관이 해도 되고, CTO 조직을 따로 만드는 것도 좋다. 미국에는 국가 CTO가 있다. 백악관 소속 CTO 아래에 공학한림원, 과학기술한림원, 의학한림원 3개 기관이 있다. 우리나라도 과학기술한림원, 공학한림원, 의학한림원이 다 있다. 우리도 CTO를 운영하면 국가 정책에 많은 브레인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할 때 기밀유지협약(NDA)을 맺어 기밀 누설을 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면 된다.
-일본 수출규제 조치뿐만 아니라 미·중 무역분쟁도 장기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추세에서 우리나라 산업기술 R&D 정책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나?
▲성윤모=그간 산업기술 R&D는 '패스트 팔로워(Fast-Follower)' 전략에 따라 글로벌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철강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데에 일조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향후에도 현재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혁신적인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한 빠른 기술 대응을 통한 '선도적 혁신가(Leading Innovator) 전략'으로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산업부는 중장기 기술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시장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산업기술 R&D를 '도전, 속도, 축적' 중심으로 전략을 추진하고자 한다. 도전적인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이를 중장기적으로 축적해나가며 기술변화에도 빠르게 대응해 추격형 R&D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술선도형 R&D로 전환해 나가겠다. '도전'을 위해서는 연구자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적인 R&D를 추진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등 중장기 대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기술획득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이미 개발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개발시간을 단축하는 연구자 우선 선정, 외부기술 도입 시 총사업비 30%, 해외기술 도입은 50%까지 계상 가능토록 개선했다.
기술역량을 축적하기 위해 공공연구원·대학을 특정 산업기술 허브로 지정, 산업계에 필요한 기술을 지속적으로 축적·공급하고, 중장기 기술개발을 확대하며, 과제 중복 심사도 완화한다.
-주력산업 재편과 신산업 육성이 산업계 화두다. 현 정부 들어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속도가 기업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평가하나?
▲권오경=지난 5월 공학한림원 산업계 회원을 대상으로 한국 산업 구조전환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한국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고 현재 위기가 구조적이라는 진단에 회원 중 98%가 동의했다. 주요 원인으로 꼽은 것이 주력산업 구조개편과 신산업 창출이 미흡하고 정부 산업구조 전환 여건조성이나 정책대응이 미흡하다는 것이었다. 정부도 문제 원인은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전향적인 조치는 없어 보인다.
다행히 이번 정부에서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되었지만 각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고, 허가 범위도 매우 제한적이다. 규제 샌드박스 취지대로 일정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누구나 그 안에서 마음껏 실력발휘를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단기간 내 사회적 파급력을 측정할 수 있다. 유의미한 데이터를 많이 확보해야 규제를 개선할 설득력을 얻게 된다. 유망한 스타트업이 계속 생겨나고, 성장하는 환경이 만들어 지지 않고서는 신산업 육성도 주력산업 재편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규제 샌드박스 성공이 절실한 시점이다.
-소재·부품·장비를 비롯해 기술독립을 위한 정부 대책 큰 줄기는 국산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체 경로를 확보해 수입을 다변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완전한 자립은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현실적인 대처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성윤모=핵심 품목에 대한 자체 기술력 없이 국제 분업구조에 지나친 의존은 우리 경제에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주력산업 공급망 안정화와 차세대 산업 성장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독자기술 확보를 중점 추진하겠다. 하지만 모든 소재·부품·장비를 우리 손으로 만드는 것은 글로벌 분업체제에 비춰봤을 때 현실적이지 않다.
우리나라는 그간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수출하는 전략으로 글로벌 분업구조에 효과적으로 잘 적응해서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성장했다. 비용과 효율성 측면에서 글로벌 분업 이점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독자 기술, 자체 공급망 확보라는 측면과 국제 분업 효과와 비용을 최소화하는 측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선은 현실적으로 철저한 비교 우위에 따라 우리 산업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술을 확보할 생각이다. 아울러 공급망 안정과 특정국가에 대한 의존도 완화 등 측면에서 수입국 다변화도 중요한 방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 개발역량이 부족한 부분은 해외 M&A, 해외 기술도입·제휴, 국내 투자유치 등 다각적인 기술 확보 방안도 추진한다.
-국가 R&D 투자 규모가 20조원을 넘고 앞으로도 꾸준히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권오경=우리나라 국가 R&D 과제 성공률이 98%에 육박한다고 한다. 정부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 전체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연구, 아니면 누구도 필요치 않는 연구에 집중해 왔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진정한 성과 창출 보다는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결국 우리 사회의 적당주의가 성과 없는 국가 R&D 사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연구자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 연구나 순수 기초 연구가 아니라면 연구개발 단계에서 수요자 입장이 반영돼야 하고 평가 또한 그들 몫이 돼야 한다.
공정성만을 강조해 비전문가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평가해서는 국가 연구개발 사업이 성공할 수 없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나 국립과학재단(NSF) 프로그램 매니저와 같이 연구과제 선정 평가, 중간 평가, 최종 평가를 총괄할 전문가를 선정하여 임기를 보장하고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주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선진국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이제는 대부분 분야에서 정상의 위치에 올랐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길을 열어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가치 있는 실패가 용인돼야 하며, 연구과제 선정평가는 엄격하게 하되 선정평가위원이 과제 멘토로 과제가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단기 공급 안정화가 필요한 '소재·부품·장비(20+a)'에 대해 추경사업을 통해 조속한 기술개발을 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성윤모=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조기 공급안정화를 위해 지난달 2일 소재·부품·장비 기술개발을 위한 추경 예산 1720억원을 확보했다. 지난달 5일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에서 제시한 조속한 기술경쟁력 확보가 필요한 품목을 중심으로 추경 기술개발 과제를 기획했다. 이후 신속하게 과제 기획·평가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25개 핵심 품목을 확정하고, 지난달 말부터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이번 소재·부품·장비 추경사업은 기존 기술개발과 다르게 소재·부품 개발과 생산을 위해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추진했다.
첫째, 불안정한 대내외 상황을 맞이해 소재·부품 개발기업(공급기업) 뿐만 아니라 수요 대기업도 전향적으로 공급기업과 함께 기술개발에 전부 참여해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둘째, 기존 기술개발 절차를 대폭 단축하기 위해 패스트트랙 형태 정책지정 방식으로 추진하고, 종래 경직적인 기술개발 방식을 벗어나 경쟁형과 복수형 기술개발 방식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기술개발에 착수하는 기간을 기존의 4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했다.
셋째, 기술경쟁력 확보에도 불구하고, 신뢰성과 '납품실적(Track-record)'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위해 이미 개발된 제품·장비 실증을 위한 테스트베드 구축, 신뢰성 평가를 통합 지원한다. 또 수요-공급기업 간 공급망 연계 등 기술개발 기업과 수요기업 간 협력모델 구성을 통해, 개발 품목이 실질적으로 수요기업 구매로 연결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산업과 기술 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인재에 있다고 본다. 공학교육 혁신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거세지는데 대학 변화는 상대적으로 더디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꿔나가야 한다고 보나?
▲권오경=지난해 출생아 수는 33만명이었다. 이미 인구절벽으로 인한 대학 붕괴가 시작됐지만 20년 후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 대학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공과대학 사명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것이다.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스탠포드, 하버드 대학 교수나 졸업생은 창업을 한다. 기업을 만들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은 여전히 논문과 특허출원 건수에 매몰돼 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대학은 이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대학도 교수도 변해야 한다. 사회문제에 깊이 관심을 갖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해야 한다. 학생이 문제의식을 갖도록 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배움이 일어나야 한다. 이는 기업가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이제는 기업가형 대학이 필요하다.
또 가르치는 방법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기성세대와 다르다. 다름을 이해하고 가르쳐야 한다. 지금 젊은이들은 재미가 없으면 안 한다. '노 펀, 노 게인(No fun, No gain)'이다. 거기에 맞춰 교육을 할 수 있는 질적 모색을 해야 한다. 유튜브를 대부분 사람들이 본다. 거기에 애니메이션까지 포함해서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것을 정부가 해줬으면 좋겠다.
연구도 기초적인 것은 골고루 나눠주고 전략적으로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집중 연구를 해야 한다. 연구비가 없으면 대학원생을 키울 수가 없다. 많은 교수가 '연구비도 없는데 뭘 하냐'고 한탄하고, 승진을 위한 논문 작업에만 몰두하면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없다. 교육을 잘하면 교육에, 연구를 잘하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커리어 패스(Career path)'를 여러 개로 만들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 교수들의 트랙을 여러 개 만들어야 한다. 젊은 학생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고 있다. 나이 든 사람들도 배워야 한다. 이해하면서 가르쳐야지, 아니면 가르칠 수가 없다.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도 재미있게 해야 한다. 어려운 것도 재미있게 바꿔야 한다. 정부가 투자를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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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최호 정책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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