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미 고개. 1805년 8월 12일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는 로키 산맥의 해발 2247m 고개를 넘어 선다. 1803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토머스 제퍼슨은 프랑스에서 루이지애나를 매입한다. 미시시피강 서안에서 로키산맥까지 광활한 땅이었다. 제퍼슨은 두 사람에게 대륙 관통 수로를 찾게 한다. 1804년 5월 두 사람은 미주리 강을 따라 상류로 간다. 어딘가엔 서부로 흘러가는 강이 있으리라 믿었다. 레미 고개를 지나 로키 산맥을 넘은 지 두 달, 10월 6일 클리어워터 강을 찾아낸다. 이제 하류로 내려가면 태평양이었다.

머서경영컨설팅의 리처드 와이즈는 난제를 하나 안고 있었다. 고객 매출이 시들해지고 있었다. 시장조사를 했지만 전략을 바꿀 만한 결과는 없어 보였다. 왜 그럴까.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와이즈는 소비자를 다시 들여다보기로 한다. 개인용컴퓨터(PC)를 생각해 보자. 놀라운 건 지출내역이었다. 컴퓨터 구입에는 2000달러가 들었다. 그러나 인터넷, 통신장치, 고장수리, 기타 서비스에 그보다 4배나 돈을 들이고 있었다. 자동차도 비슷하다. 유지비용은 자동차 감가상각비의 4배나 됐다. 연료, 보험, 고장수리에 금융비용까지 소비자가 신경 써야 할 건 얼마든지 있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철도운송업에서 차량비용은 총비용의 20분의 1밖에 안 됐다. 그 20배만큼을 시설·노무·회계·재무 비용으로 치르고 있었다.
질문은 간단해졌다. 과연 이런 것까지 고민해야 할까. 성능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 혁신이면 충분한 것 아닐까.
힐티도 그랬다. 고객들은 주문을 선뜻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장비만 있다고 돈을 버는 게 아니란 점이다.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벽에 구멍을 내는 것이지 전동드릴 그 자체가 아니었다. 더 나은 공구를 더 싸게 파는 대신 고객이 원할 때 원하는 공구를 서비스하는 것으로 바뀌면 고객 가치는 분수령을 넘어설 수 있었다. 물론 분수령 넘은 땅은 모두 새로운 기회 공간이 됐다.
요즘 기업을 보면 가치사슬 확장이 유행이다. 업스트림은 다운스트림으로, 다운은 업으로 가려 한다. 그러나 여기에 뚜렷한 기준은 없다. 내가 하는 것보다 위면 업, 그 밑이면 다운이란 식이다. 업스트림은 생산, 미드스트림은 저장·운송, 다운스트림은 유통과 판매란 식이다.
그러나 실상 중요한 것은 가치 분수령을 찾는 것이다. 힐티는 장비 대신 서비스가 분수령이 됐다. 잭 웰치는 GE캐피털이 가치의 분수령이라고 봤다. 인튜이트에는 웬만한 고객이 필요하지 않는 복잡한 기능을 빼는 것이 분수령이 됐다. 넷플릭스는 영화관이란 새 공급 채널이 분수령이다. 위로, 아래로가 해결책이 아닌 셈이다.
루이스와 클라크가 넘은 레미 고개는 북미 '대륙분수령' 위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부터 강물은 모두 태평양으로 흐르게 돼 있다.
우리는 종종 큰 그림을 망각한다. 내가 선 곳에서 다운스트림과 업스트림을 찾는 것은 답이 아니다. 성공한 기업이 찾아낸 것은 업이나 다운이 아니라 분수령이었다. 내 제품이 매개하는 고객 가치의 분수령을 어딜까. 거기에 마치 대륙분수령을 넘어선 모든 강이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것처럼 새로운 기회 공간이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