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고통스런 선택에 박수를](https://img.etnews.com/photonews/1911/1233018_20191120132318_597_0003.jpg)
아마존이 '반지의 제왕' 드라마 판권을 2억5000만달러에 계약하고 첫 시즌에만 1억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넷플릭스는 올해 150억달러를 투자,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한다. 국내에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숫자다.
세계 170여개국에 방송되면서 신드롬을 일으킨 미국 방송사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회당 제작비가 영화 한 편과 비슷한 수준이다. 마지막 판인 시즌 8에는 회당 약 1500만달러(약 18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 8은 편당 누적 평균 4300만명이 시청하며 미국 케이블TV 사상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고, '왕좌의 게임' 시리즈는 에미상 드라마 부문 시상식에서만 59관왕을 기록하며 전설의 드라마가 됐다.
국내에서도 새로운 드라마 장르를 개척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2007년에 방송된 '태왕사신기'는 가상의 나라 '쥬신'과 실존 인물 '광개토태왕'을 접목시킨 드라마다. 제작 기간 3년에 4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됐다. '태왕사신기'는 30%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제작비를 충당하지 못해 오랫동안 후유증을 앓았다. 그러나 판타지 사극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당시 기준으로 진일보한 컴퓨터그래픽(CG)을 선보이는 등 큰 족적을 남겼다.
2019년 '아스달 연대기'도 시청률 등 표면에 드러난 성과와는 별개로 시도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 '아스달 연대기'는 제작비 540억원 규모의 판타지 대작이다. 국내에서는 비교 대상을 찾아보기 어려운 제작 규모로, 파격의 스토리를 그려 냈다. 국내 최고 연출자·작가·배우·스태프들도 참여했다. 피할 수 없는 글로벌 콘텐츠 경쟁 속에서 새로운 도전 방식과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국내 전통 매체의 수익성이 약화되면서 드라마 제작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새로운 영상 플랫폼 발달과 경쟁 환경 변화에 따른 영향이다.
이 같은 움직임의 불가피한 측면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다. 드라마화할 원작이 풍부하지 않고 체계를 갖춘 프로듀싱 시스템, 공동 집필 환경 등이 정착되지 않았다. 투자비 회수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콘텐츠 투자 축소는 해답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을 고려한 대작 드라마는 투자사, 제작사, 방송사 모두에 고통스러운 선택이지만 누군가는 걸어야 할 길이기도 하다.
올해 초 CJ ENM의 신인 창작자 지원 사업 '오펜(O'PEN)'은 3기 드라마 작가 공모 심사 기준을 '딜레마와 아이러니가 살아 있고, 글로벌 플랫폼에 어울리며, 독특한 캐릭터가 살아 있는 현대 감각의 문제작'으로 정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 '지정생존자' '왕좌의 게임' 등을 접한 시청자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기발한 상상력과 글로벌 감각을 갖춘 작가를 발굴해야 하는 방향성을 반영한 결정이다.
앞에서 언급한 '아스달 연대기'는 검증되지 않은 장르의 가능성을 보고 드라마 투자 및 제작이 이뤄졌다. 기존에 볼 수 없던 참신한 장르를 탄생시켜서 한국 드라마업계의 희망을 보여 준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드라마 제작 활성화가 필요하다. 성공 방정식에서 벗어난 드라마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도전 장르에 제작사와 투자사들의 관심이 크지 않다. 이미 검증된 작가, 어느 정도 보장된 드라마 장르 등에 의존해 비슷한 콘텐츠를 지속해서 배출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신인 작가도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답은 이미 눈높이가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인 시청자들의 손에 달렸다. 시청자에게 외면 받는 작가, 연출자, 제작사에는 밝은 미래가 없다. 콘텐츠 투자를 축소하는 소극 대응은 미봉책일 뿐 이미 변화된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
국내 드라마업계가 새로운 경쟁 문법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다. 작가, 연출자, 제작사가 글로벌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험난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응원의 박수가 필요할 때다.
김지일 CJ ENM 오펜센터장 ivan.kim@cj.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