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0월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액은 154억90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3.3%나 줄었다. 11개월 연속 감소세다. 11월 수출도 감소세가 유력하다.
우리나라 주력 ICT 수출 품목인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수출이 모두 감소하면서 우리 경제의 큰 축인 수출이 부진을 겪고 있다.
ICT 수출 감소로 10월 전체 수출 역시 14.7% 감소하면서 11개월 연속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ICT 분야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3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품목이다. 특히 반도체는 전체 수출의 20% 안팎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ICT 수출 부진의 가장 큰 요인은 수요 부진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확산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몇 해 전부터 거론됐다. 실제 이러한 기대감과 함께 반도체는 2~3년간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수요는 가파르게 꺾이기 시작했다. 수요의 핵심으로 거론됐던 서버 등 정보기술(IT) 인프라 수요가 기대이하로 줄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타오르던 수요가 꺾인 데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한몫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3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와 10% 추가관세를 발표했다. 이에 반발한 중국 역시 미국산 돈육 등 8개 품목에 25%, 120개 품목에 15% 관세를 부과하며 관세를 맞받았다. 이후 미국은 5월 중국산 첨단기술 품목에 25% 고율관세 부과를 발표했고 통신제품에 대한 수출 규제를 천명했다. 이때부터 중국의 성장률이 꺾이기 시작했고 세계 교역 역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본격적인 보호무역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글로벌 양대 국가의 무역전쟁은 양국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7월 일본이 외교적 문제를 이유로 우리나라에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을 옥죄기 시작했다. 동북아에서도 보호무역 장벽이 고개를 든 것이다. 앞서 지난 2016년에는 중국이 한반도 내 고고도미사일(THAD) 배치를 이유로 우리나라 상품 수출을 제한하면서 우리 경제가 타격을 입은 것처럼 우리 주변을 둘러싼 정치·지정학 요인으로 인한 보호무역 파고가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보호무역주의는 해당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결코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일례로 1930년대에 미국이 펼친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공황에 빠진 세계 경제를 더욱 어렵게 했고 나아가 2차 세계대전이란 불운한 사태를 겪는 단초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 15명을 포함한 미국의 경제학자 1140명이 트럼프 행정부에 보호무역주의를 공개 경고한 바 있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세계 각국과 통상 문제로 극심한 마찰을 빚고 있는 현재가 대공황시기와 비슷하다고 우려했다. 무역확장법 232조와 슈퍼 301조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1930년대 관세 인상 경쟁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세계 강대국이 보호무역의 울타리를 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나 산업계로선 이를 막을 방도는 없다. 그렇다고 속절없이 기다릴 수도 없다.
그나마 우리에게는 새로운 상품 교역 시장을 만드는 것이 해법이다. 그런 점에서 내년 정상 간의 서명을 앞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우리에게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인도가 제외됐지만 협정에 참여하는 15개국은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인구와 함께 젊고 유망한 국가가 다수 포함됐다. 그만큼 성장 기회가 높은 국가들이다.
25일부터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도 RCEP 협정 체결 국가 정상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 우리로서는 국가 간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모쪼록 찾은 기회를 우리 산업과 경제가 다시 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