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에는 선문답이 나온다. “조오련이 하고 바다 거북이하고 수영하면 누가 이기는지 아나?”가 그 대사다. 아시아의 물개로 칭송받은 수영 영웅 조오련도 태생이 바다인 거북을 이기긴 어려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출생지와 자란 환경, 사회적 배경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어 한 것일까.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폭력배 세계가 그러할진대 우리 사회의 일상생활은 더했으면 더했지 별반 다르지 않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골드바를 손에 들고 태어난 아기는 대부분 윤택한 생활을 한다. 천운을 타고났다. 이른바 수저계급론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21세기판 음서제도 더해졌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점점 신화가 되고 있다. '일신우일신' 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막혀 가기 때문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하나둘 쓰러진다. 신분 상승 파이프라인도 경화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사회조사' 통계는 이 같은 사회상을 반영한다. 자식 세대에서 사회경제적지위(SES)가 높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28.9%에 불과했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자식이 본인의 계층보다 높이 올라갈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10년 전에는 48%였다. 200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은 그래도 국민 둘 가운데 한 명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날이 갈수록 자수성가형 법률가·기업가·외교관·의사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최근에 드는 물음이다. 반칙과 특권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 사회적 힘의 추에 좌우되지 않는 형태를 떠올린다. 밸런스가 잘 맞는 상황, 상식이 통하는 경우다. 그런데 최근 공정과 불공정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진영 간 프레임 싸움에 갇히고, 집단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판단이 쉽지 않다.
대표적인 게 대학입시 제도다. 정시모집 비율을 확대하는 건 공정한 게임의 룰을 갖추는 것으로 이해된다. 흑수저도 이른바 스카이 캐슬 입성을 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 정치권과 교육계는 반대한다. 헷갈리는 이유다.
학종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대안 가운데 하나다. 공교육 정상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채택해야 할 이상적인 제도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공정성이다. 누구나 고개를 끄떡이는 공정함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불신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공정이 보장되지 않은 채 다양성을 추구하는 제도는 지속하기가 어렵다.
통계청 조사에서 국민 둘 가운데 한 명은 우리 사회를 불신했다. 2019년 대한민국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됐다. 학생부종합전형 논란도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고등학생이 논문을 쓰고 대학교에 들어가는 게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부 고3, 고2 학생은 입시 코디네이터 코칭을 받고 있을 것이다.
정치 분야도 마찬가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이 논란을 빚고 있다. 야당 대표는 며칠째 단식 투쟁을 하다 병원으로 실려갔다. 비례대표는 좋은 취지임에도 계파 공천, 줄세우기 등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국회의원으로 뽑으려는 선한 의도와 달리 논란은 지속된다. 비례대표 의원 선발 과정이 과연 공정하고 투명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탓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부의 대물림이 지속되고 있다. 정치적 힘, 경제적 계급 역시 수평 이동 경향이 강하다. 계급·계층의 상하 이동성은 사실상 단절돼 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20대 청년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꿀 수 없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