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장점 마을에 비료 공장이 들어왔다. 100여 명 남짓한 주민이 모여 살던 조용한 시골 마을은 20년 사이 죽음의 마을이 됐다. 마을 주민 중 30여 명이 암에 걸렸으며 이 중 17명이 사망했다. 인근 개울의 물고기가 떼죽음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했지만, 민원을 넣을 때마다 관련 부서는 형식적인 수질 검사만 실시했다. 2015년 언론이 이 문제에 주목하면서 작은 마을의 비극이 세상에 알려졌다. 2017년 주민들의 청원이 받아들여져 공장이 문을 닫았다. 그 후 2년간 조사를 마치고 환경부는 2019년 6월 20일 비료공장의 환경오염물질이 대기 속으로 퍼져나가 주민들의 암 발생률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는 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몰래 태운 담배 찌꺼기가 원인
환경부는 담배를 피우고 남은 담배 찌꺼기(연초박)를 건조할 때 나오는 유해물질이 익산시 함라면 장점 마을 집단 암 발병 사태의 원인이라고 최종 결론 내렸다. 연초박을 태우면 1급 발암물질인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가 연기 속에 섞여 대기 속으로 퍼진다. 담배특이니트로사민은 국제암연구소에서 발암성 물질로 분류한 화학물질이다.
담배 속에 포함된 니코틴이 탈메틸화 반응을 거치면 노르니코틴을 생성한다. 이 노르니코틴을 연소시키면 니트로소화 반응이 일어나 대량의 담배특이니트로사민이 만들어진다. 여러 개의 벤젠환 고리가 결합한 다환방향족탄화수소는 거의 모든 동물에게 암을 일으킨다. 유기용매에 잘 녹아들며 피부를 통해 쉽게 침투해 피부암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연초박은 반드시 건조해 퇴비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장점 마을에 들어온 공장은 380℃가 넘는 고온으로 연초박을 태워 유기질 비료를 생산했다. 공장용지 허가를 내준 익산시도, 공장에 외주를 맡긴 KT&G도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았다.
장점 마을 주민은 암에 걸릴 확률이 전국 표준 인구보다 2.22배 높았다. 그 중에도 담낭암은 16.01배, 피부암은 21.14배로 유의미한 수치를 보였다. 정부는 환경부의 조사 결과 비료 공장과 장점 마을 주민의 암 발생 사이의 과학적 인과관계는 명료하지 않지만, 법률적으로는 인과관계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수용했다.
환경부는 발암 물질의 짧은 반감기 때문에 생체에 미친 영향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어렵고 인과관계를 밝히기에는 80명이란 인원수가 충분하지 않지만 이번 경우는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염 물질과 장점 마을 주민의 암 발생 간에 긴밀한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라 해석하는 편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정부가 환경오염과 질병 간 연관성을 인정한 첫 사례로 남았다. 장점 마을 주민들은 환경부의 발표 후 비료 공장 부지 허가를 내어준 전라북도와 익산시에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무책임한 기업과 고통 받는 지역 주민
익산 장점 마을 사태는 잘못된 폐기물 처리로 인해 지역 주민이 고통을 겪은 비극이다. 우리보다 일찍 산업화를 이룩한 선진국 역시 오염 물질이 여러 번 문제를 일으켰다. 국소적 환경 오염 때문에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이 집단 발병한 사례로는 1950년대 일본 도야마현 근처 광산에서 흘러나온 카드뮴 중독으로 인한 '이타이이타이병'이 유명하다. 주민들은 요통, 골연화, 신부전장애 등에 시달렸고 12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비슷한 시기에는 메틸수은에 의한 해수 오염으로 구마모토현 미나마타 시의 주민들이 신체 마비, 시청각 능력 상실, 언어장애, 정신이상 등의 증상을 보였다. 이 병은 도시의 이름을 따 미나마타병이라 불리며 우리나라도 화학산업단지가 밀집한 여수시와 울산광역시에서 다수 발병사례가 보고됐다.
미국 뉴욕주의 '러브캐널 사건'은 부도덕한 화학 회사가 일으킨 인재였다. 나이아가라 폭포 부근의 운하 산업이 취소되자 후커 케미컬이라는 화학 회사가 운하 공사 중 파놓은 웅덩이에 자사의 화학 폐기물을 무단 투기했다. 1940년부터 1952년까지 12년간 2만 톤이 넘는 폐기물을 운하 밑에 묻었다. 20년 후 이 지역의 유산율은 주변 지역보다 4배나 더 높았으며 1970년대에 태어난 아이 중 상당수가 선천성 기형증을 앓았다. 미국 정부는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들여 환경 복원에 나섰지만 아직 유독성 화학물질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에린 브로코비치의 환경 소송은 피해 배상에 있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992년 미국 서부의 에너지 회사인 PG&E사의 공장에서 배출한 중크롬이 주변 수질을 오염시켜 마을 사람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캘리포니아 지역의 작은 사막 마을의 주민들은 피부병과 두통에 시달렸고, 여성들은 반복적인 유산을 경험하거나 유방암에 걸렸다. 지방 변호사 사무소의 직원이었던 에린 브로코비치가 주민의 뜻을 모아 600명 이상이 PG&E를 상대로 한 시민집단소송을 제기했고 PG&E사는 미국 법정 사상 최고액인 3억 3,300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사례는 지역 주민의 건강을 볼모로 자사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도덕한 기업들의 태도에 경종을 울렸다.
WHO는 산업국가의 국민 중 25%는 환경 요인에 의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경고한다. 환경병의 심각성을 보고하는 연구 결과가 끊이질 않는다. 비록 정부의 공식 인증을 받지는 못했지만 1985년 울산 공단 지역에서 발생한 집단 중금속 중독사건 등 우리나라도 과거 여러 번 환경 오염과 관련한 질병이 나타났다. 유해농도보다 낮은 정도라 하더라도 반복해서 유독 물질에 노출될 경우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복합화합물 민감증(MCS: Multiple Chemical Sensitivity)은 오염물질과 증상 사이의 인과 관계를 밝혀내기도 쉽지 않다. 환경병은 인재다. 익산 장점 마을의 경우도 비도덕적인 회사 경영과 정부 기관의 무책임한 관리 태도 때문에 안타까운 희생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장점 마을과 관련한 바람직한 후속 조치를 기대해본다.
글: 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