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기 첫발

인터넷 네트워크 ⓒ게티이미지뱅크
인터넷 네트워크 ⓒ게티이미지뱅크

방송통신위원회가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을 최종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용자 피해를 차단하고 국내외 인터넷 기업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이드라인이 또 하나의 역차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 를 대상으로 집행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이드라인, 자체가 의의

방통위가 연구반을 만들고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 정책을 공식 추진한 건 지난해 11월이지만 인터넷 망을 둘러싼 갈등이 쌓인 건 훨씬 이전부터다. 2016년 12월 페이스북이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접속경로를 변경해 속도 저하 현상이 발생했을 정도다. 그만큼 갈등의 골이 깊었다는 의미다.

반대도 심했다. 국내 CP는 글로벌 CP가 빠진 채 또 하나의 역차별 규제가 탄생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글로벌 CP를 대변하는 오픈넷은 가이드라인에 항의해 인터넷 상생발전협의회 마지막 회의에 불참했다.

그럼에도 방통위가 가이드라인을 밀어붙인 건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욱 방통위 상임위원은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소수 글로벌 CP 트래픽이 LTE 기준 상위 10개 사업자 중 66.5%를 차지한다”면서 “망 이용대가가 포함된 인터넷전용회선시장 매출은 2011년 5705억원에서 2017년 4050억원으로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망 이용대가 총액이 감소하고 이는 국내 인터넷 망을 장악한 글로벌 CP가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방통위는 첨예한 의견대립을 최대한 조정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낸 데 의의를 부여하고 앞으로 지속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표철수 방통위 상임위원은 “가이드라인 시행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면서 “시행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보완하면 된다”고 말했다.

◇약화된 규정

갈등을 조정하다 보니 양보는 불가피했다. 통신사업자는 '망 이용대가'라는 용어와 규정을 담으려고 했으나 가이드라인 자체를 반대하는 CP 의견도 담아야 하는 방통위로서는 최소한의 규정만을 느슨하게 담은 최종안을 내놨다.

허욱 위원은 “사업자와 시민단체 협의안을 내놓으려고 했으나 사업자 이견으로 대폭 완화했다”면서 “콘텐츠 파워로 사실상 국내 망을 공짜로 쓰는 해외 CP에 시정을 촉구하는 정부 의지를 담았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은 망 이용계약 당사자인 ISP와 국내 CP 이해를 반영하는 핵심 항목을 포함했다.

CP는 트래픽 경로 변경 시 현저히 부정적 영향이 예상되면 ISP에 사전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제2 페이스북 사태를 막기 위한 규정이다.

특정 계약 강요, 불합리한 계약 지연 및 거부, 현저히 불리한 조건 요구 등을 불공정행위 유형으로 정의했다. 망 이용계약 협상에 나서지 않거나 캐시서버 무상설치를 요구하는 글로벌 CP를 압박하는 동시에 ISP가 국내 중소CP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다.

불공정행위의 부당성을 판단하는 조건으로 '인터넷 망 구성 및 비용분담 구조'을 포함한 것은 의미가 깊다. 인터넷 망 양면시장성을 인정하고 ISP와 CP를 망 투자비 분담 주체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콘텐츠 경쟁력과 사업전략 등 시장상황'을 부당성 판단기준에 포함, 중소CP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도록 했다.

◇글로벌 CP가 관건

천신만고 끝에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이 마련됐지만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글로벌 CP 규제집행력 확보가 과제다.

가이드라인 자체가 법적 강제력이 없다. 국내 ISP와 CP는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겠지만 글로벌 CP는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CP는 가이드라인이 '또 하나의 역차별'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CP가 줄곧 '현지 규정을 준수한다'고 강조해온 만큼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가이드라인이 망 이용계약 분쟁에서 새로운 판단 기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다. 페이스북-방통위 행정소송 1심 결과에서 보듯 지금은 전기통신사업법 등 현존 법 테두리에서 망 이용계약 분쟁을 판단하지만 앞으로는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법을 해석하고 입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통신사 관계자는 “망 중립성도 가이드라인 형태지만 모두 지킨다”면서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글로벌 CP에 대한 규제집행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가이드라인을 보완하는 국회 입법 활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통신사 관계자는 “가이드라인만으로는 글로벌 CP에 대한 직접적인 집행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면서 “국회 제출된 다양한 법안이 구체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