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잭팟을 터뜨렸다. 배달의민족(배민)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하면서 4조7500억원 규모의 빅딜을 성사시켰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가격 2조5000억원의 두 배에 이른다. 배민은 B급 문화를 표방했지만 결과적으로 A급 유니콘 기업이 됐다. 마케팅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기적을 일궈 냈다. 스타트업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공무원, 건물주가 장래 희망으로 자리 잡은 요즘 시대에 창업으로 성공 스토리를 썼다. 당분간 김 대표는 우리나라 스타트업과 벤처 종사자들에게 벤치마킹 모델이 될 게 분명하다.
매각을 두고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우선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광고 카피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다. 게르만 민족 패러디가 나오는 이유다. DH는 독일 기업이기 때문이다. 궁금하다. 김 대표는 왜 DH를 택했을까. 투자 회수를 위한 엑시트를 받아줄 국내 기업은 없었을까. 국내 대기업이 '그림의 떡'으로만 봐야 하는 상황도 상상이 가능하다. 재벌은 온라인 골목상권 침해의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비판성 댓글을 보면 DH는 차선이길 바란다. 사실 배민은 '애국마케팅'으로 성장했다. 인수 주체인 DH는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배민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DH 자회사 요기요는 '배민장부' 사건을 놓고 배민과 소송 불사까지 갔다. 결과적으로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가 됐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 관문을 통과하면 '한가족'이 된다. 매각 시점이 시기적으로 좀 이르지 않으냐는 생각도 든다. 10조원 기업으로 육성한 후 매각 카드는 어떠했을까.
공정위를 의식한 고민 흔적도 엿보인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시장 독점 논란을 감안해 인수합병(M&A) 보도자료에 쿠팡을 언급한 것은 사전 포석으로 해석된다. 독점의 중요 잣대인 시장 획정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지금부터 미래에 만들어질 시장 생태계를 근간으로 시장 구분이 이뤄져야 한다는 법 논리 전개가 예상된다. 예컨대 배민, 요기요, 배달통만 놓고 보면 배달 앱 시장 점유율은 90%를 넘는다. 그러나 쿠팡, 마켓컬리 등 새로운 형태의 배달 기업을 포함시키면 점유율은 떨어진다. 쿠팡 등 이들 두 기업은 통신판매중개업과 통신판매업을 결합한 형태다. 결국 DH의 배민 M&A 결정은 음식배달 앱 분야에서는 1위지만 통신판매중개사업자 시장에서는 여러 플레이어 가운데 한 곳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소비자 편익과 자영업자 보호도 생각해 볼 문제다. 우아한형제들은 수수료 인상과 같은 소비자·소상공인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공식 밝혔다. 그러나 시장 우려는 여전하다. 시장이 폐쇄성을 띠게 되면 당연히 수수료 또는 광고료 인상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염려다. 유사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버가 동남아 사업권을 그랩, 중국 사업권을 디디추싱에 각각 매각한 것은 참고 사항이다. 디디추싱, 그랩 모두 인수 이후 수수료를 대폭 올려 비판을 받았다.
공은 이제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로 넘어갔다. 기업결합 심사가 기다린다. 물론 지금까지 공정위가 M&A 승인을 불허한 기억은 거의 없다. 이베이코리아의 지마켓 인수, LG유플러스의 CJ헬로비전 인수 등이 무난히 넘어갔다. 그러나 DH와 배민 기업결합 심사는 고려할 게 더 많다. 650만 자영업자가 지켜본다. 최소한 소비자 보호 안전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공정위의 선택이 기다려진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