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기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새해 벽두부터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가 1월 1일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를 아는 사람 모두 의외의 선택이라고 한 목소리다.
그의 이력을 감안하면, 남들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유수의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이 쏟아졌을 게 분명한 데 일절 마다한 것이냐며 궁금해 하는 사람도 상당했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는 2018년 청와대가 과기정통부 제2차관을 선임하며 발표한 문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식견을 보유한 행정 전문가이자 대외협상능력과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글로벌 전문가.'
그는 체신부를 시작으로 정보통신부, 미래창조과학부, 과기정통부에서 31년간 공직자로 재직했다. ICT 전문성에 대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ICT 정책 중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통신기술(ICT) 성장 전략 'IT839 정책'부터 5G플러스(5G+), 인공지능(AI) 국가전략 등 주요 정책을 주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전권회의 의장과 OECD 디지털경제정책위원회 의장으로 활약했다. 국제점 감각은 두말할 필요없다.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글로벌 기업의 러브콜이 없었냐고 묻자, 그는 호의는 고마웠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평생을 공직에 몸담으며 국민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일과 우수한 교육환경을 조성해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같은 공적 책무라며 대학총장으로 변신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공직 경험과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할 글로벌 감각을 활용,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성장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포부도 드러냈다. 국내 주요 대학의 러브콜에도 한국뉴욕주립대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분명했다.
대담=김원배 통신방송과학부장
-공직생활 이후 다양한 길이 있었을 텐데, 교육자의 길을 선택한 배경은.
▲1년 4개월 전 한국뉴욕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8년 과기정통부 제2차관으로 취임할 때부터 공직생활을 마친 이후에는 학교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교수 시절 학생을 가르키던 경험이 좋았다. 공직생활을 하며 두꺼운 책을 읽을 여유도 적었다. 학교에서 책을 읽고 학생과 소통하며 교류하던 일이 인상 깊었고, 이런 생각이 대학으로 이끌게 된 같다.
-학교에서는 어떤 분야를 가르쳤나.
▲디지털경제 개론(Introduction to Digital Economy)을 위주로 4개과목을 강의했다. 디지털경제가 전통경제와 구분되는 특성은 무엇인지, 어떻게 다른지 등을 가르쳤다. 관련된 책을 낼 준비를 하던 내용으로 강의했고 상당히 인기가 좋았다. 기술평가 방법론도 강의했는데, 이 과목에서는 클라우드, 빅데이터, 바이오메트릭스(생체인식) 등을 모두 다뤘다. 사이버 시큐리티 강의도 했다. 과기정통부 차관 취임 전 3학기에 거쳐 강의했는데, 많은 보람을 느꼈다.
-대학총장은 연구와 강의보다는 행정업무가 더 많지 않나.
▲과기정통부 차관으로 재직하며 인공지능(AI) 국가전략 등 정책을 마련하면서 느낀 건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좋은 인재를 양성하느냐가 결국 관건이다. 인재가 학교에 남아 연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산업과 연계한다면 더욱 좋다. 우리나라는 산업을 해야 하고 서비스만 갖고 성장하기 어려운 나라다. 국가 경제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강의도 하고 싶지만 행정도 사람을 키운다는 맥락에서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학교에 오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한국뉴욕주립대 총장으로서 미션은.
▲대학총장은 최고경영자(CEO)와도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 한국뉴욕주립대는 2012년 개교한 젊은 학교다. 기반을 마련하고 성장을 이루어야 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특별히 4차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and Mathematics)분야에 특화한 스토니브룩, 패션기술대학교(FIT)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교가 한국뉴욕주립대학교에 들어와 있으니 경쟁력이 있다. 향후에는 학과도 늘려야 하고 연구자금과 기부도 늘려야 한다는 현실적 과제가 있다. 한국에 있는 미국대학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글로벌 인재와 같이 커가는 학교로서 우리나라뿐 만아니라 세계를 보는 관점에서 우리 학교에 대한 투자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을 홍보하며 학교를 성장시켜 나가겠다.
-글로벌 관점에서 가치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나라가 공적개발원조(ODA)를 하듯이, 학교도 ODA를 도입해 개발도상국 학생을 지원하고 가르친다. 가나, 베트남, 네팔, 르완다, 에디오피아, 파키스탄 등 에서 국가적인재가 몰려온다. 가나에서 온 캐리스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한국뉴욕주립대학교에서 석사과정까지 훌륭히 마치고 지금은 시라큐스 대학원에서 전액장학금을 받고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국제사회에 대한 공헌으로서 이처럼 좋은 게 없다. 한국 학생과 글로벌 학생 비율을 보면 8대2 정도 되고 모든 학생은 4년중 1년은 미국에서 교육 받는다. 스토니브룩대 응용수학통계학과는 미국 탑3 안에 들어간다. 컴퓨터 공학과는 탑15 수준이다. 엔지니어링 스쿨이 아주 좋다. FIT는 세계 최첨단 패션스쿨이다. FIT 글로벌 캠퍼스는 밀라노와 우리나라에만 세계에서 2군데 설립돼 있다. 이런 부분을 잘 활용해 좋은 인재를 키우는 게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에 한국뉴욕주립대학교를 질적·양적으로 성장시키도록 노력하겠다.
-임기는 어떻게 되나. 한국뉴욕주립대가 민원기 총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미국대학은 별도 임기가 없다. 이사회와 계획에 대해 약속을 하고 운영하면 된다. 이사회는 제가 국제전기통신연합(ITU), OECD 등 국제사회에서 했던 일을 높게 평가하고 이러한 경험을 학교 발전과 접목하려 한 것 같다. 항상 생각했던 게 우리나라의 글로벌화다. 한국뉴욕주립대학교는 스토니브룩, FIT 등을 기반으로 처음부터 글로벌 할 수 있는 환경이고 교수진도 우수하다.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
-학교를 키우는게 최대 과제인가.
▲양적·질적 성장은 모두 중요한 과제다. 동시에 대학교육의 본질은 좋은 교육으로 학생을 키우고, 사회에 공헌 하는 것이다. 좋은 교육을 위해선 좋은 교수가 필요하고, 연구환경이 좋아야 한다. 인재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수 기업과 대학간에 연계할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지난 31년 공직생활과 달라보인다.
▲공직사회와 대학 모두 퍼블릭 섹터(공적영역)다. 사적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에서 보듯 점에서 공직과 교육이 완전히 다른 영역은 아니다. 공무원 시절 국가 정책을 다뤘다면, 지금은 학교라는 공적조직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물론 공무원 시절에는 과장, 국장, 실장, 차관 등 정해진 루트의 일을 한다. 학교를 키우려는 일을 하고, 후원자를 만나는 점에서는 성격이 달라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공직과 교육자로서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추진하는 일의 본질은 같다고 본다.
-공직 관점에서 예를 든다면.
▲OECD 디지털경제정책위 의장으로 일할 때 디지털경제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리된 게 없어보였다. 본질적으로 디지털경제가 기존경제와 무엇이 다른지 등에 대한 개념 정의가 부족했다.예를 들어, 전통 경제에선 숫자가 중요하다. 성과와 효율을 숫자로 평가한다. 하지만 디지털경제에서는 비즈니스를 완전히 완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상품이 시장에 나간다. 데이터는 체증적으로,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효용이 높아진다. 그런 부분을 정리하고 해결하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보고 주력했다.
-과기정통부 차관 시절을 돌아본다면.
▲과기정통부 차관으로 보낸 지난 1년 4개월은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추진했던 2개의 목표가 다 달성됐다. 차관 취임 직후 동료들에게 여러 정책을 분산해서 할 것이 아니라, 딱 2개를 집중해서 하자고 했다. 첫 번째는 산업정책이다. 5G를 단순히 상용화하는 게 아니라, 산업을 키울 인프라로 활용하기 위한 5G플러스(5G+) 산업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무현정부 대표 산업정책인 IT839(8대 신규서비스·3대 인프라·9대 신성장동력)를 집행할 때 담당 과장이었고, u-IT839 정책을 수립한 바 있다. IT839와 같이 지속 점검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고려해 5G+ 전략을 수립했다. 5G를 중심으로한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그 연장선 상에서 인공지능 국가전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디지털경제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정부직제상으론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웠다. AI를 전담할 정책국 조직도 없었다. 정보보호와 네트워크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있지만, 책임지고 담당할 전담 조직도 부족했다. 이러한 부분이 반영되어 과기정통부의 직제가 개편된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공직생활 30여년 전체를 돌아볼때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많은 일을 했다. KT 민영화와 장기증분 접속료 도입. 소프트웨어(SW)산업발전 기본계획수립, IT839 계획 수립, 와이브로 협상 등을 진행했다. 글로벌혁신센터(KIC)를 만든 일, 우체국 근무, 중앙전파관리소장으로 근무했던 일 등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ITU 전권회의 의장. ITU 이사회 의장. OECD 상임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경험도 국가에 감사드릴 일이다. 가장 마음 아픈 일을 꼽는다면 재직중 우리나라 IT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던 정보통신부가 사라진 것이다.
-공직 31년 경험을 통해 대학과 사회에 기여할 길을 찾는다면.
▲총장으로 취임해 시스템으로 일을 하자고 강조했다. 누구나 예측 가능한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자고 한다.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면, 조직의 불안요소가 해소하고,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 투명하면 공정해지고, 자율성도 높일 수 있다. 공직사회의 경험을 통해 시스템과 투명성을 제도화하고 공평성과 공정성을 높여 한국뉴욕주립대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일의 본질은 항상 같다. 문제의 본질을 빨리 파악하고, 문제에 대한 가용대안을 만들고 대안 중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후에는 우직한 집행을 해나가야 한다. 정책만 던지고 가선 안된다. 정책을 수립하면 꾸준히 추진하면서 성과와 결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교육과 사람도 마찬가지다. 교육의 결과가 좋은 학생이라는 성과로 돌아오느냐는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의 결과다. 정책 경험을 살려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며 사람을 키우는 일에 매진하겠다.
○민원기 한국뉴욕주립대 총장은···
서울 관악고등학교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워싱턴대학교에서 MBA를 수료했다. 1987년 행정고시 31회로 공직사회에 입문해 체신부 통신기획과, 정보통신부 통신업무과장, 정책총괄과장 등을 지냈고 미래창조과학부 대변인,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OECD, UN-ESCAP, 월드뱅크에서 활동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전권회의 의장과 OECD 디지털경제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재임하는 등 글로벌 ICT 리더로, 국내보다 세계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민 총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조실장을 역임하고 한국뉴욕주립대 교수로 재임하다 2018년 8월 과기정통부 제2 차관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말 차관 퇴임 이후 1월 1일 한국뉴욕주립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ICT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탁월한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국제기구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감각과 안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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