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다. '데이터 3법'이 드디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거대 야당이 빠져 김이 샜지만 민주당 등 여야 4+1협의체는 의결정족수 148석을 확보해 9일 본회의를 열고 민생·경제 법안 198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여러 법안이 많았지만 역시 핵심은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등을 아우르는 데이터 3법이다. 통과까지 무려 1년하고도 2개월이 걸렸다. 20대 회기 내에 처리하지 못했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상황이었다. 법이 국회를 넘으면서 새로운 데이터 세상은 시간문제라는 분위기다.
잔칫상에 찬물을 끼얹는 질문이다. 자, 그렇게 원하던 데이터 3법이 통과됐다. 앞으로 우리도 AI시대로 거침없이 달려갈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이르다. 과제가 첩첩산중이다. 개인정보 활용을 위한 원칙과 가이드라인만 '제도'로 합의했을 뿐이다. 법 조항부터 구멍이 많고 느슨하다. 가령 정보 활용 핵심 조항인 개인·가명·익명정보 정의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와 공익 보존 목적' 등의 범위는 모호하다. 상업 목적에 대해서도 딱히 규정이 없다. 자의적 판단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데이터 보관에서 분석, 처리 방법까지도 세부 원칙을 정하지 못했다. 통합 감독기구격인 개인정보위원회 설립과 관련해서도 권한과 역할 등에서 오해 소지가 남아 있다. 시행령 등 후속작업을 통해 세부 내용을 채우는 '더 큰 숙제'가 남아 있다.
걸림돌은 또 있다. 바로 '데이터 리터러시'다. 데이터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아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막연히 개념으로만 알고 있지 않을까. 수 년 동안 규제로 꽁꽁 묶이면서 데이터 이해도가 크게 떨어졌다. 데이터를 읽고 숨겨진 뜻을 파악하는 해독 능력인 리터러시가 걸음마 수준이다. 그나마 기업은 낫다. 세계 시장이나 동향을 예의주시해서 선진국과 간극을 빠르게 따라 잡을 수 있다. 데이터 제공 주체인 개인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집해서 활용할 상당 부분 데이터는 개인에게서 나온다. 정작 본인 데이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로 흘러가며 제대로 활용되는지 모른다면 영원히 데이터 후진국에 머물 수 있다. 거래소가 만들어지고 데이터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다.
데이터 3법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교과서대로 설명하자면 인공지능(AI)시대와 데이터 경제를 위한 기반이다. 대한상의 논평 그대로다. 데이터 3법 통과에 맞춰 상의는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와 같다”며 “빅데이터와 AI 등 신산업 분야 사업모델을 개발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룩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단순화하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자신이 가진 데이터를 사고팔며 사업화하고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데이터 고속도로'를 구축해 데이터를 가장 안전하게 잘 쓰는 나라를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첫 단추가 데이터 3법이다.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다. 그것도 너무 늦었다. 법이 최종 목적지일 수 없다. 당장 AI시대가 왔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제는 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데이터와 친해져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잠시 가쁜 숨을 가라앉히고 어떻게 데이터와 놀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