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는 두 가지로 구성된다. 부제는 원주제를 해석하는 필터가 된다. 은유란 유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유사성을 창조한다. 은유(메타포)는 고립된 언어가 아니다. 문장이고 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가 말하려 하는 것이 바로 초점이다.”
언어철학자 맥스 블랙의 저서 '모델과 메타포'에 대한 어느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세월이 지나면 잊혀 가는 기억이 있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종종 자기 자신이 이룬 혁신조차 망각한다. 한때 혁신 기업 소리를 듣던 소니 같은 기업조차 예외가 아니다.
언젠가 소니는 포터블이라는 세상에 없던 혁신 공간을 찾아냈다. 역대 최고 혁신 제품에 워크맨을 빠뜨릴 학자는 없다. 이런 소니가 정작 MP3 출현을 보지 못했다. 당시 어느 국내 MP3 제조사의 광고 카피가 “Sorry SONY!”(미안 소니)였다.
분명 세월 속에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운 혁신도 있다. 내가 서가에 간직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1978년 무렵이다. 혼다가 '도박을 하자(Let's gamble!)'란 슬로건을 건다. 고백하지만 밀리언셀러 시빅과 어코드에 멈춰선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
혼다는 새 엔지니어팀을 꾸린다. 최고경영진은 단 몇 줄짜리 요구 사항을 내민다. 핵심은 그 전에 없던 새로운 콘셉트를 찾을 것.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분명했다. 시빅과 어코드를 떠올리게 하는 뭔가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제조사 느낌이 나서도 안 된다.
도대체 어떻게 찾아가야 하나. 다른 답을 찾자니 질문부터 다시 해야 했다. “우리는 자동차를 뭐라고 생각하나.” 한참을 의논하다 보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정작 기계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사람은 빠져 있었다. 자동차란 사람이 타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 둘은 정반대에 있었고, 매번 충돌하고 있었다.
기계장치라는 생각을 넘어서면 뭐가 될까. 수많은 그리고 그 유명한 'M-M철학'이 나온다. '탑승자를 위한 공간은 최대로, 기계를 위한 공간은 최소로.'
이제 이걸 렌즈 삼아 디트로이트가 만들어 둔 “자동차란 이런 거야”란 상식을 뒤집어 보기로 했다. 왜 자동차는 길쭉하고 납작해야 할까. 미끈한 유선형이란 보기에 좋지만 다른 장점은 뭐지. 우리는 왜 이렇게 매번 불편하게 쪼그려 앉아야만 할까. 우리가 짐짝도 아닌데 말이지.
이들이 내린 결론은 톨보이였다. 이름은 이랬지만 실상은 '네모난 상자'였다. 우선 자동차가 그리 길쭉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사람이 들어갈 상자치고 높이는 너무 낮았다. 엔진과 기어는 남은 공간에 넣었다.
이렇게 네모반듯한, 사람 담는 움직이는 상자가 탄생한다. '박스형 경차'라는 새 가치 공간도 이렇게 열린다.
어느 날 지하철 이동통로를 걷다가 중고서점 앞에 눈길이 멎었다. 서점 앞 가판대에 한 권에 3000원이란 안내문이 보였다. 번듯해 보이는 책들이 3000원이라니. 무슨 책이 있나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왠지 익숙한 빨간색 표지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1판 양장판이었다.
한때 필독서이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종종 망각하기에 아까운 것들도 있다. 간혹 족쇄가 될 수도 있겠지만 벽 한 칸을 헐어서라도 이런 흘려 둔 혁신은 주워 두고 싶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