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국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코스피는 2190선이 무너졌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다. 안전자산인 금값도 연이어 상승 중이다. 반면에 국고채 금리는 급락하는 등 한국 금융시장도 롤러코스터 국면을 맞이했다.
지난해부터 중국 금융시장 개방에 힘입어 현지에 진출한 대형 은행은 컨틴전시 플랜(위기관리 전략) 수립에 돌입했다. 국내 중대형 기업과 중국에 동반 진출하거나 프로젝트 산업을 지원하는 국책은행도 사업 진행에 악재다. 당분간 한국 금융시장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로 큰 혼란을 맞이할 전망이다.
◇중국 진출 은행 '융단 폭격'
몇 년 전부터 중국 시장에 공을 들여온 시중 은행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당분간 영업에 큰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우한 지역에 직접 진출하지 않은 곳이 상당수지만 우한 공포가 중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한국 수출기업과 긴밀한 금융 협력진영을 형성한 시중은행은 직격탄을 맞았다. 또 중국 현지 인력 문제와 지점 가동 문제를 놓고 은행별로 컨틴전시 플랜을 곧 가동할 조짐이다.
한국계 은행 최초로 중국에 법인을 설립한 우리은행은 우한지역 내 점포와 파견근무자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 명절 기간 후베이성을 방문한 직원을 2월까지 격리하는 방안을 취했다.
전 직원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감기 증상이 있는 직원은 즉각 병원 방문, 출근도 제외하는 플랜을 마련했다.
국내에서는 외국인 특화점포와 병원입점점, 임산부 근무점포, 시장인근 점포 대상으로 면밀한 모니터링에 착수했다. 감염 의심이 들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즉각 의료기관에서 검진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농협도 우한에 거점이 없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농협중앙회와 농협은행 등이 긴급 문자를 발송하는 등 대응에 돌입했다. 농협중앙회는 부회장 명의로 긴급 알림 문자를 전 임직원에게 발송했다.
설 연휴 중국을 왕래한 임직원은 사무실 통보 후 출근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사무소장은 직원 위생관리 지도에 나서라고 알렸다. 농협은행도 28일 종합기획부장 주관으로 긴급 부서장 회의를 가졌다. 은행장 주관으로도 영업본부장 대상 화상회의를 갖고 경과 상황 보고와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농협은행은 단계별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했다. △본부 차원 위기조치반 운영을 통한 일괄 대응 △설 연휴 중국여행 등 방문 직원 출근금지 시행(유급휴가) △감염의심직원 격리와 계통보고 실시 △본점, 영업점 직원 마스크 의무화 및 대고객안내문 부착 △집합 교육, 회의, 교육, 출장, 회식 자제 등이다.
◇영업제한 등 초강수 방안 마련도
신한은행은 최악 상황을 대비해 중국현지 특정 점포 영업 제한을 검토한다. 해당 지점이 폐쇄되면 인근 점포에서 업무 대행이 가능하도록 제반 전산 구현을 완료했다. 전산 대행 세부조치, 필요사항, 대응방안 준비에 착수했다. 국내에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리대책반 가동에 돌입했다.
KEB하나은행은 중국 현지법인에서 마련한 5단계 위기 대응방안 중 3단계로 격상을 검토 중이다. 3단계는 비상사태 발생 선포, 위기조직 및 비상근무조직 운영, 대체사업장을 준비한다는 게 골자다. 하나은행은 중국 내 1개 본점영업부와 12개 분행, 13개 지행을 운영 중이다.
지성규 은행장을 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위기대응 단계를 '경계' 단계로 격상, 국가전염병에 대한 신속한 대응 체계를 유지키로 했다.
은행 영업점을 찾은 고객 감염예방을 위해 전 영업점에 손 소독제와 비접촉식 체온계를 비치키로 했으며 감염 예방 수칙을 안내키로 했다.
또 은행 전 영업점 직원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동거가족을 포함한 직원 감염 의심 및 확진 시 자가 격리 등 비상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다.
지 행장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확산이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 은행 영업점을 찾는 국내〃해외 고객 안전과 지속적인 금융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KB국민은행도 비상대책위원회와 종합상황반을 최근 가동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대응 인력운영계획도 수립했다. 공항인근과 환전센터 등 관련 영업점주 경계를 강화했다. 영업점과 국외점포, WM점포 등 모든 지점 대상으로 통합 모니터링 플랜을 수립했다.
◇우한 분행 운영 기업은행, 직원 21명 근무
은행 중 유일하게 우한지역에 분행을 개설한 기업은행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기업은행은 2012년 중국 우한에 국내은행 최초로 분행을 개점했다. 21명 직원이 근무한다. 아직 한국 직원 철수, 점포 휴점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중국 춘제 기간이 내달 2일까지 연장돼 현재 우한 점포는 운영하지 않는다. 대책 마련 시간을 번 셈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연휴 전까지만 해도 점포를 정상 운영했다. 연휴기간 들어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면서 “금일(28일) 우한지점을 비롯한 현지 지점에 대한 구체적 대응책을 마련한다”고 전했다.
기업은행은 중국 현지에서 총 16개 점포를 운영한다. 재직 직원 수는 490여명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 사무소를 운영한다. 현지 주재원에는 외부활동 자제를 주문했다.
수은 관계자는 “현지에서 한국은행, 산업은행, KOTRA, 한국무역보험공사와 공동 대응한다”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책기관인 KOTRA는 별도 지시 전까지 현지 재택근무 방침을 정했다. 무역보험공사,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등 타국책기관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별도 대응방안을 수립 중이다.
중국에 지점이나 법인을 둔 보험사도 현지 주재원에게 주의사항을 당부하는 등 조치에 나서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DB손해보험, 코리안리재보험 등 국내 보험사들이 합작법인이나 지점 등 형태로 진출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중국 당국의 현지 안내를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회사도 의심 증상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중국에 나간 주재원에게 출장금지 명령을 내리고, 주재원 가족들에 대한 국내 입국 권유·외출금리 등을 당부했다”고 답했다.
보험업계는 국내 산업계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앞서 보험업계는 신종 질병이나 태풍·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피해를 본 우리 기업 등에 보험료 납부 유예 등 조치를 진행했다.
업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는 확진자가 4명에 불과해 기업 등 산업계에 피해를 미쳤다고 볼 수 없다”면서 “신종 코로나가 국내 산업에 상당한 피해를 미쳤다고 판단할 경우 기업에 보험료 납부 유예 등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