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3개 소재의 대 한국 수출을 규제했을 때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 국내 핵심 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사용되는 소재였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학계는 물론 산업 현장에서도 걱정과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규제 시행 한 달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응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반신반의했지만 이는 곧 사실로 확인됐다. 8월 중순부터 일본 불화수소의 대체품이 반도체 생산 라인에 적용됐다. 수많은 우려를 뛰어넘은 위기 극복의 순간이었다.
사실 규제가 시작된 지 한 달 보름 만에, 그것도 국산화가 어렵다는 핵심 소재를 대체한 건 납득이 좀체 안 된다. 그러나 사전 대비와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2018년부터 일본의 수출 규제 가능성을 대비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보복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다 2018년 11월 실제로 일본에서 불화수소 수출에 일시 제동을 걸자 예상은 이제 확신이 됐다.
수출 규제가 시작된 지 반년이 지난 현재 피해는 거의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불안감 조성 등 심리 타격은 있었지만 생산 차질과 같은 실물 타격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자국 소재의 판로를 틀어막는 부메랑으로 작용하는 양상을 보였다. 또 한국의 기술 자립을 촉진시켜 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생큐 아베!'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그러나 되짚어볼 대목이 있다. 그동안 소재·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생태계 육성을 소홀히 한 부분이다. 완제품은 수십, 수백 가지의 소재와 부품들로 이뤄진다. 아무리 작은 부품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급망을 철저히 관리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에서 드러난 것처럼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는 대부분 일본에 의존하고 있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가장 값싸고 품질 좋은 것을 구입해 사용하는 경제성 원칙에 따라 형성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한쪽으로 쏠린 의존도는 이번처럼 공격자의 조준점이 될 수 있음을 목격했다.
또 다른 교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합치면 빠른 속도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스텔라와 모리타 불화수소를 대체한 솔브레인, 이엔에프테크놀로지, 램테크놀로지는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와의 협력이 바탕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삼성과 하이닉스의 기술 지원과 평가, 구매까지 담보가 적극 뒷받침됐기 때문에 대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던 고순도 불화수소까지 국산화를 할 수 있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 동반 성장의 중요성이 다시 인식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사실 더 중요한 건 기술 개발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속 투자와 지원이 뒷받침돼야 좋은 소재나 부품이 나온다. 그러나 단기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국내 산업은 기반이 취약했고, 악순환이 반복됐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없었으면 지금처럼 기술 개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를 연구자와 개발자들에게서 듣는다. 일본의 도발로 지금은 달라졌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짐한다고 말했다. 기술 강국, 경제 강국을 향한 노력들이 반짝 불 피우고 사그러들지 않길 바란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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