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벤처붐 정책도 좋고 자금 지원도 좋지만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건 규제 완화입니다.” 한 스타트업 지원기관 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는 “금융위, 3년간 '국가대표 유니콘' 30개 기른다” 제하의 기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 중점 과제로 '혁신기업 국가대표' 육성 프로젝트를 선정해 추진한다. 혁신 기업을 1000개 선정해 3년 안에 국가대표급 유니콘 기업 30개사를 길러 내는 것이 골자다. 종합지원반을 꾸려 정책금융, 민간금융 간 조율과 투자, 대출, 보증 등 스타트업에 종합 금융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처 현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정부가 종잣돈 지원에 나서 준다면 당연히 고마운 일이지만 그보다 급한 건 규제 완화 속도라는 게 현장 분위기다.
이 대표는 “금융위에서 지난해 규제 샌드박스로 몇십개 허용해 줬지만 아직도 혁신 서비스 규제 완화에 너무 많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면서 “스타트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실시하는데 기존 금융 규제 틀에 맞출 게 많아서 어렵다”고 토로했다. 금융은 정부 허가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중·대형 기업에도 금융 규제 장벽이 높기는 마찬가지다. 케이뱅크는 인터넷은행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만 기다리면서 개점 휴업 상태다. 토스는 이미 증권업을 준비한 상황에서 증권선물위원회 의안 상정이 미뤄지고 있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핀테크 혁신 속도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 호출·공유 서비스 기업 '그랩'의 광폭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그랩은 디지털은행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핀테크 강자로 급성장했다.
그랩 자회사인 그랩파이낸셜그룹은 그랩페이, 그랩리워드, 대출, 보험 등 금융 연계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엔 싱가포르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벤토인베스트를 인수하면서 자산관리 시장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모빌리티 기업인 그랩이 빠르게 핀테크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이유는 정부의 규제 완화다. 한국과 다른 점은 기존 규제와 맞지 않거나 기존 산업과 충돌하는 영역이 있어도 정부 당국이 서비스 활성화 기회를 충분히 주고, 스타트업의 현장 목소리를 들으면서 규제를 마련해 왔다는 것이다.
김지혜기자 jihy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