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상생법)'을 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이해가 엇갈리고 있다. 입장차가 뚜렷하다.
상생법을 둘러싼 쟁점은 크게 3가지다. △기술유용 행위에 대한 정의 △상생법 상의 입증 책임 규정 △중소벤처기업부 권한 강화 등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중복규제' vs '대상 명확화', 기술유용 정의부터 갈등
상생법 개정안은 기술유용 행위를 공개되지 않고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관리되는 기술자료를 부당하게 사용 또는 공개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부정경쟁방지법에 명시된 '영업비밀', 하도급법의 '기술자료', 중소기업기술보호법의 '중소기업기술'처럼 개별 법령에 기술유용 행위를 명시했다.
재계에서는 기술유용 행위를 별도의 법률에서 정하는 것이 중복 규제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미 하도급법 등에서 기술 자료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추가 규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 개정의 핵심인 기술유용 행위 신설부터 양측이 갈등을 빚고 있는 셈이다.
재계는 “개정안은 중기부 처벌권한 강화 등 규제일변도 내용이어서 대〃중소기업 간 자율적 협력관계 도모라는 상생법 입법취지도 훼손한다”면서 “이미 공정위와 중기부는 거래 당사자 간 계약, 사업활동, 대금지급 단계에서 중복조사가 빈번한데, 개정 시 중기부 처벌권한 강화로 양 기관 간의 중복처벌은 물론 상이한 처벌도 가능하게 되어 힘든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중소기업계는 각 법률에서 규율하고 있는 조항이 기술탈취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면서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부정경쟁방지법의 영업비밀은 상표 및 상호 등의 부정사용을 위한 것이고, 기술보호법의 기술 자료는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또 현재 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기술유용 행위도 하도급법에 국한돼 수·위탁기업 간의 거래에 대해서는 적용이 어려운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생법 개정안 갈등의 핵, '기술유용 행위 입증 책임'
기술유용 행위의 입증 책임은 큰 갈등 요인이다. 상생법 개정안은 수탁기업(중소기업)이 기술유용 피해 관련 사실을 입증했을 경우, 위탁기업(대기업)이 해당 행위를 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기업이 기존 거래하던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물품과 유사한 물품을 자체 제조하거나 제3자에게 제조를 위탁했을 때 대기업의 기술 유용 행위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재계에는 대기업 등 위탁기업에 입증 피해를 전가하는 것이 법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공정한 시장 경제 기본원리와도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혁신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나오면 기업들은 자유롭게 그 기업과 거래할수 있는게 시장경제 원리”라면서 “개정안은 기술 유용 분쟁 우려때문에 혁신기업과 거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비판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기술 유용 입증 책임을 민간에 전가하면 특정 대상에 대한 마녀사냥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 “이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선 범죄 행위 증거를 국가 기관에서 입증해야한다. 이를 위배하면 위헌 논란도 불거진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수탁기업은 경제적 여건과 인력 부족 등으로 기술자료 유용 등을 입증하기 매우 힘든 실정이라고 주장한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 근거다. 이미 납품대금 관련 부당 행위를 위탁기업이 입증하도록 하는 내용이 기존 법안에도 담겨 있는 만큼, 기술유용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은 “거래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을'인 중소기업은 침해사실을 입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비용 부담으로 소송은 감히 엄두도 못 낸다”면서 “기술유용에 대한 입증책임을 수탁기업과 위탁기업이 고르게 분담해 불공정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생법 개정으로 인한 거래처 변경 등 부작용 역시 재계가 상생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재계에서는 상생법이 개정되면 국내 대기업은 기술 유용 분쟁을 우려해 오히려 해외 업체와 거래를 늘려 국내 중소기업의 사업기회가 박탈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계는 “해외 기업 핵심기술의 보호 환경이 우리나라보다도 높은 수준이라면서 해외 등으로 거래업체를 변경하는 것이 기술유용 처벌 때문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과잉규제로 기업 활력 저해 vs 스타트업 혁신 기회
정부 권한 강화 역시 재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부터 관련 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활동에 더 큰 저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미 중기부 등 주관 부처에서는 기술침해, 불공정거래 사건 해결을 위해 민관 공동의 상생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제도화를 준비하고 있다.
전우현 한양대 교수는 “중기부 직접처벌 강화, 조사시효 부재 등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제한이 될 것”이라면서 “과잉규제를 자제해야 일자리 확대와 기업 활력 제고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기업 규제보다는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을 발맞춰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혁신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