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 중견기업이 있다. 중견기업은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 사이를 연결하는 허리 기업으로, 한국 경제 핵심을 담당한다.
현재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 전체 기업에서 0.7%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역할은 엄청나다. 2018년 기준 전체 기업의 매출 15.7%를 중견기업이 일궈 냈다. 일자리 창출도 비슷하다. 전체 기업의 고용 대비 일자리 13.8%를 중견기업이 마련했다. 질도 단순하지 않은 고급 일자리다. 중견기업 평균 연봉은 대기업의 90% 수준이다.
수출도 대단하다. 전체 수출 가운데 16.3%를 중견기업이 기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견기업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의 핵심이다.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을 죽일 목적으로 주요 소재 수출을 금했을 때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은 비결은 이에 대응 가능한 중견기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할에도 우리나라에서 중견기업은 찬밥 신세를 못 면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짧은 유예 기간 후 그동안 받던 다양한 조세 특례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면에 규제는 대폭 늘어난다. 이에 따라 기업을 일부러 조직을 쪼개 가며 중소기업으로 남으려는 상황도 벌어진다.
기업이 잘되려면 신바람이 나야 한다. 그러나 중견기업이 되면 기세가 꺾인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중견기업 쇠퇴로 이어진다. 이들의 매출, 일자리 창출, 수출 실적이 연쇄 하락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도 우울해질 수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주 산업통상자원부가 '제2차 중견기업 성장촉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성장 계획이 기존의 외형 성장에서 내실 성장으로 전환됐다. 과거에는 중견기업의 절대 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했다. 중견기업이 워낙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에는 3000억원 이상 매출 기업을 2018년 630개에서 2024년 840개로 늘리고, 중견기업 수출액을 2018년 982억달러에서 2024년 1200억달러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포함했다. 중견기업 생산성의 질을 끌어올린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부장 중견기업 △미래차·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를 이끌 신산업 중견기업 △지방의 대표 중견기업 △신남방 및 신북방 정책을 이끌고 갈 중견기업 등 육성정책이 제시됐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내용이다.
정부는 금융 지원에도 나선다. 산업정책이 아무리 좋아도 금융이 따라가지 못하면 허구다. 이번에는 금융을 지원, 실효를 내겠다는 의지다.
중견기업의 사업 재편에도 힘을 쏟는다. 우리나라 산업은 빠른 속도로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다. 지금은 이들을 정리하고 신산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정부는 조선, 자동차 등 산업에 포진된 중견기업의 사업 재편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계획에는 그동안 부르짖던 법제상의 모순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도 담았다. 입법은 국회 몫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만 그 외 걸림돌을 가능한 한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중견기업을 위한 실질 정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기업 지원 방식만으로는 효과를 낼 수 없다. 산업 발전 방향과 경영 환경 개선이 포함된 산업 정책, 기업을 지원하는 기업 정책, 여기에 실행력 확보를 위한 금융 정책이 어우러져 한 방향으로 흘러야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번 산업부 계획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결실 있는 실행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이홍 한국중견기업학회 회장 kas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