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미국에서는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 엑손모빌 소속 유조선 밸디즈호가 알래스카 인근에서 좌초되는, 일명 '엑손 밸디즈호 사건'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수십척의 바지선이 빙하 사이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음에도 기름이 물과 함께 젤리 상태로 굳으면서 얼어붙어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로 번졌다. 이 심각한 문제의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시멘트회사 엔지니어 존 데이비스의 아이디어였다. 시멘트가 굳지 않도록 계속 기계로 젓듯이 오일도 진동기계를 이용해 자극을 주면 얼지 않는다는 견해였다. 이로써 17년 동안 골치를 썩여 온 난제가 해결됐고, 데이비스는 현상금 2만달러를 받았다.
아이디어를 발굴한 회사는 2001년에 창립한 이노센티브이다. 전 세계 과학기술자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각종 난제를 해결하는 크라우드소싱 기반의 집단지성 플랫폼이다. 이노센티브에서는 2001~2013년 3년 동안 1650건이 넘는 문제가 제시됐고, 그 가운데에서 1500여개의 해결책이 제안돼 성공률을 약 85% 기록했다.
이 비즈니스 사례는 두 가지를 시사한다. 첫째 문제 해결 방법의 다양성과 다학제성이다. 개별 이슈들이 복합 원인에 의해 진화·발전하고 타 이슈들과 결합돼 고착화 및 지속되는 문제가 난제다. 현대사회 문제의 복잡성이 심화됨에 따라 정형화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도 매우 난해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난제 해결에서 여러 주체가 참여해 다양한 방법론을 활용해야 한다.
둘째 과학기술 정책에서도 관점 전환이 요구된다. 이제는 난제라는 관점에 의해 문제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야의 확대와 조정을 위한 국가 정책의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도 글로벌 또는 국가 수준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인다. 유럽연합(EU)에서는 '임무중심형 혁신정책'(MOIP)을 통해 환경오염, 고령화, 재난재해 등 원대한 도전 과제를 미션으로 정하고 세부 미션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종합과학기술혁신회의(CSTI)도 미래 사회 전망을 바탕으로 '문샷형 연구개발(R&D) 프로젝트' 제도를 도입했다. 달성이 어려운 난제임에도 해결될 시 파급력이 큰 분야 중심으로 담대한 발상을 담은 R&D를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 R&D 프로젝트를 통해 과학·산업기술 분야 난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사회문제해결형 R&D 사업 역시 성과 도출 단계에 와 있다. 이제는 난제라는 점에서 사회·경제 문제 근저인 원인을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국무총리실 산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국가 난제 분야 및 이슈 선정, 이슈별 솔루션 도출, 정책·학술 공론화와 다학제 지식 네트워크 마련을 목표로 삼는 이른바 '국가난제 사업'을 총 5개 연도 계획의 대규모 정책 연구로 시작했다. 2019년은 '이슈 스캐닝' 중심의 1차 연도로서 개념 정의 및 이슈 선정·도출, 인문사회 및 과학기술 전문가가 참여하는 국가난제포럼 운영, 국가난제 지형도 분석을 진행했다. 2020년은 '이슈 솔루션' 중심의 2차연도로서, 1차 연도 사업을 바탕으로 이슈별 심층 분석을 본격 수행한다.
'정부R&D 투자 24조원 시대' 관점을 '국가 R&D 투자 100조원 시대'로 확대하는 관점이 필요한 때다. 이러한 견지에서 과학기술정책은 국가 혁신에 공헌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미래 혁신정책 어젠다 제시의 일환으로 난제 해결에 매진하고 있다. 국가 난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혁신정책이 그 시작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조용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미래전략팀장 yongra@stepi.re.kr
-
김영준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