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공공기관과 국회를 비롯한 기성조직이 '혁신성장'이란 제목으로 스타트업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혁신 창업 기업에는 가뭄 속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사상 최저 수준인 이자율도 중앙은행이 시장에 보내는 '스타트업의 미래 위험을 적극 인수하라'는 신호에 해당한다. 각종 위험에 맞서는 창업가에게 이보다 반가운 분위기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 지원과 저금리 정책이 혁신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극 수용과 실패에 대한 진심 어린 격려 없이 자본만으로 우리 사회에 성장과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수많은 혁신 시도의 가능성을 인내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불순하고 위험하게 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진정한 혁신은 기성 조직 변화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기득권자이자 혁신 대상이면서 동시에 주체가 될 수도 있는 기성 조직의 역할은 예산을 배정·집행하면서 사후 감사하는 것에 머물러 있다. 그들 스스로 혁신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혁신을 주도해야 하는데 국민 세금으로 거둔 예산을 나눠 주는 것 말고는 다른 역할이 없다.
세계 어느 나라든 혁신을 성공시키려면 아이디어와 행동에서 시작된 노력이 사회 수용으로 이어져야 한다. 변화에 대한 수용성과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자금을 아무리 많이 풀고 낮은 금리를 유지해 봐야 스타트업 성장을 도모하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이 '유니콘'을 얘기한다. 유니콘은 지금 당장은 적자지만 미래 가치를 반영한 주식 평가 가치가 1조원을 넘는, 가능성 있는 기업을 의미한다. 유니콘을 많이 배출하려면 창업자가 미래 가치를 실현할 때까지 인내할 수 있는 신뢰 자본이 있어야 한다. 실패한 창업자를 진심으로 격려할 수 있는 아량도 있어야 한다. 신뢰 자본과 아량이 없다면 우리는 또 다른 버블을 만들 뿐이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자본에 원활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역설이지만 가장 훌륭한 훈련이라고 믿었다. 부족한 자본을 상상력과 독창성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베이조스는 “아마존 내에서 예산에 여유가 없던 부서가 가장 성공한 사업 결정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자본 투입보다는 상상력과 독창성을 바탕으로 한 아이디어가 사회에서 인정되는 문화가 스타트업 성장에 더 중요할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정해진 정답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한 새로운 길을 찾아온 혁신가와 창업가에게 돈은 부차 문제다.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게 더 중요하다.
삼성과 현대의 창업 스토리도 본질은 같다. 조선소 건설 자본이 부족해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으로 해외 금융회사를 설득해 자금을 조달했다는 일화가 있다. 아이디어와 상상력 그리고 실행력이 뒷받침된다면 자본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높은 것이 창업이고 혁신이다. 높은 실패 확률에도 이들의 시도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주저앉을 것이다. 창업가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행하는 용기, 실패와 실수를 격려하는 사회 문화가 부족한 상태에서 오로지 돈으로 창업과 혁신을 돕겠다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연목구어(緣木求魚)와 진배없다.
지금도 많은 스타트업 대표가 사업에 실패할 경우 그 비용을 개인이 짊어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말로는 '일신우일신'이라 하면서 창업 재수생은 외면한다.
모 창업가는 최근 그가 하는 사업의 불법 여부를 다투는 재판의 최후 진술에서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사회는 혁신 시도를 포용하고, 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사회를 포용해야만 우리 사회의 지속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돈은 스타트업 생존에 충분조건이 될 수 있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인식 변화다. 인식의 변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기득권자인 기성세대의 인식 전환이 선결의 핵심 요건이다.
윈스턴 처칠의 금언을 스타트업 대표들과 나누고 싶다. “제군들, 우리는 지금 돈이 없으니 생각을 해야 할 때다.”
김홍일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센터장 hongil.kim@dcam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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