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금융규제 샌드박스' 서비스 업체에 코로나19 대응 컨틴전시 플랜 제출을 요구, 논란을 빚고 있다. 재택근무 등으로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코로나19 계획까지 만들어야 하는 금융 스타트업과 핀테크 기업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 혁신 사업인 '금융규제 샌드박스'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소비자가 접점인 지급결제, 통신+금융, 유통 등 기업·소비자간거래(B2C) 기반 서비스는 사업 자체를 무기한 연기하거나 실증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혁신금융 서비스를 준비 또는 실시하고 있는 80곳 이상의 기업에 긴급 업무지속계획(이하 BCP)을 17일까지 제출할 것을 의무화, 일부 기업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형 금융사에 이어 혁신금융 서비스 사업자에도 엄격한 컨틴전시 플랜을 요구하고 나선 셈이다. 종사자가 10명이 채 안 되는 스타트업이 상당수여서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핀테크지원센터는 지난 11일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받은 기업에 일괄 공문을 보내 기업별 BCP를 만들어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비상대응 조직과 역할, 위기 상황별 대응 매뉴얼, 직무별 개인 행동요령 등 금융규제 샌드박스가 중단 없이 운영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담았다.
BCP는 재난 발생 시 비즈니스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컨틴전시 플랜을 뜻한다. 재해·재난으로 정상 운용이 어려운 데이터 백업과 같은 단순 복구뿐만 아니라 고객 서비스 지속성 보장, 핵심 업무 기능 지속 환경을 조성해 기업 가치를 최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일부 기업은 코로나19로 사업 자체가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일주일 만에 대형 금융사에나 적용할 만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오라는 것 자체가 비효율이라고 꼬집었다.
금융 당국의 혁신금융 서비스 업무지속계획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비상 대응 조직과 역할 △위기 경보 수준별 조치 및 절차 △자연 재해, 인적 재해, 기술적 재해, 전자적 침해 등 위기 상황별 대응 매뉴얼이다. 일각에서는 직무별 개인행동 요령, 비상 대응조직 구성 등은 소수 인력만이 근무하는 중소형 스타트업 위기 대응 플랜이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받아 서비스를 개시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일주일 만에 대형 금융사나 갖출 법한 위기 대응 플랜을 짜 오라고 하니 당황스럽다”면서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나의 방안을 짜깁기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혁신금융사업자는 “금융 당국의 혁신금융 서비스 담당자는 통화도 잘 안되는데 사업 자체가 개시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BCP를 일률적으로 짜 오라는 건 시장을 관치로 바라보는 습성을 버리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 대응은 이해되지만 좀 더 시장 탄력적으로 위기 매뉴얼 등을 만들거나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이와 관련해 금융 당국 관계자는 “획일적으로 중소형 기업에 BCP를 강제할 목적은 없다”면서 “전자금융감독규정에 따라 업무 지속성을 확보하지 않은 기업에는 불이익이 갈 수 있는 만큼 권고를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에 전달한 BCP 가이드라인은 금융 산업뿐만 아니라 전 산업군에서 공통 작성해야 하는 최소한의 정보를 추린 것”이라면서 “제출 기한 마감을 정한 것을 알게 돼 언제까지 내라는 계획도 모두 철회했다“고 밝혔다.
핀테크지원센터 관계자는 “영세한 기업도 있는 만큼 BCP 계획을 탄력 운영할 수 있게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