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열기가 국내 대기업 그룹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분사(스핀오프) 사내벤처가 연이어 탄생하고 있는데다 창업에 시도하려는 참여 임직원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그룹 창업 공모 외 계열사 자발적 사내벤처 프로그램도 생겨나고 있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등 과감한 지원책으로 사내 임직원 아이디어 혁신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룹별 사내 벤처 육성책 '풍성'…운영자율성 부과
국내 5대 그룹들이 사내 벤처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각 그룹마다 차별화된 지원책으로 독립 벤처 육성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삼성그룹은 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Creative Lab)을 통해 현재까지 259개 과제를 진행, 1060명의 임직원이 참여했다. 259개 과제 중 93개는 사내에서 활용됐고, 40개는 회사에서 독립해 나가 스타트업으로 창업했다. 매년 평균 5개사가 분사한 셈이다.
C랩 과제에 참여하는 임직원은 1년간 현업에서 벗어나 수원 삼성 디지털시티와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내 삼성전자-서울대 공동연구소에 마련된 독립 공간에서 스타트업처럼 근무할 수 있다. 팀 구성, 예산 활용, 일정 관리 등 과제 운영에 대해 팀 내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직급이나 호칭에 구애 받지 않고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다.
재계 중에서 가장 먼저 사내 스타트업 육성에 나선 곳은 현대·기아자동차이다. 2000년 '벤처플라자'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지난해 9월까지 총 11개사가 스핀오프했다. 지난해 '엠바이옴' '튠잇' '폴레드' 등 3개사가 동시 분사했다. 올해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가동한 이후 연간 기준 역대 최다 독립이 이뤄질 예정이다.
현대·기아차도 초반에는 분사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으나 지난해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혁신 아이디어를 접목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개발(R&D) 활동에 과감하게 투자 지원하면서다.
롯데그룹은 신사업 발굴 활성화를 위해 2016년부터 '롯데 사내벤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 스타트업 투자법인 롯데액셀러레이터를 통해 사내벤처펀드1호를 운용하며 임직원 아이디어 혁신에 마중물을 붓고 있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전문가와의 1:1 멘토링, 벤처기업 관련 집중화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창업지원을 제공한다. 사내벤처 프로젝트에서 최종 우승한 직원은 팀 멤버를 구성한 후 롯데액셀러레이터에 파견돼 1년 동안 독자적 사업 활동공간에서 내·외부 간섭 없이 신사업에 도전하게 된다. 1년 후에는 최종 사업화 타당성 검토 결과에 따라 분사하거나 원소속사로 복귀할 수 있다. 롯데는 우승한 직원이 효과적으로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사업초기지원금 및 투자금 3000만원을 지급한다.
◇SK·LG, 계열사별 특성살려 사내벤처 독자 운영
SK와 LG는 그룹 차원이 아닌 각 계열사별로 독자적으로 사내벤처 육성책을 추진하고 있다. 계열사별 비즈니스 특성을 반영해 차별화를 꾀했다.
SK그룹은 '따로 또같이'라는 기업문화에 따라 계열사별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 그룹 전체의 연계 성과로 묶어낸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는 사내벤처 육성 프로젝트인 '하이게러지(HiGarage)'를 통해 4개 사내벤처를 이미 탄생시켰다.
SK하이닉스는 자체 사내벤처 전용펀드를 설립해 지원 및 투자규모를 확대하고, 사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진행해 사내 스타트업을 선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4개 스타트업은 법인 설립을 마쳤고 본격적인 사업 전개를 앞두고 있다.
SK텔레콤은 사내 유망 독자 기술을 독립시켜 세계적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스타게이트'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스타게이트를 통해 광학엔진 전문기업 '옵틱스'가 설립을 준비하는 것을 비롯해 음원분리기술, 빅데이터 분석 기술 등이 사내벤처로 독립을 검토 중이다. 옵틱스의 경우 빔프로젝터 등에 탑재돼 최대 100인치 영상을 제공 가능한 기술력을 갖췄다.
스타게이트는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기업으로서 장점을 살려 △기술 상용화 가능성 검증 △거점 시장 검토 △기술 스핀아웃 △성장 지원 등 4단계로 지원한다. 분사한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도록 공간·장비·기술이 지원되며 외부 전문가와 연계해 사업 운영과 발전 방향에 대한 별도 코칭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LG그룹도 LG CNS,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에서 사내 벤처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이들이 사내벤처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별도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사내벤처 설립 후에는 비용, 공간, 전문 멘토링과 아이디어를 제시한 임직원이 아이템 기획부터 사업화까지 직접 책임지고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내벤처들은 회사 설립 후 최대 1년 동안 준비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창업 혹은 사내 사업화라는 두갈래 길에서 선택한다.
이 외에 롯데그룹 역시 최근 그룹 공모 외 계열사 자발적으로 사내벤처 프로그램을 추가 도입하고 있다.
◇성실 실패에 “책임 묻지마”…재입사 문 열려
대기업 그룹의 사내 창업 열풍이 지속되고 있는 주된 배경은 본사에서 창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아 직원들의 부담감이 적기 때문이다. 창업 준비 과정에서 실패하더라도, 혹은 분사에 성공했으나 자립에 실패하더라도 부담이 없다.
삼성의 경우 C랩에서 스타트업으로 분사할 때, 5년 내 희망 시 재입사가 가능하다. 현대·기아차, 롯데그룹도 분사 후 3년 내 희망 시 재입사 가능하다. 특히 롯데그룹의 경우 3년의 창업 기간을 '창업휴직제'로 적용, 재입사 시 부담감을 줄였다.
LG의 경우 계열사별로 기준이 다르다. LG유플러스의 경우 분사 이후 2년 이내, LG CNS는 년도 제한 없이 복귀 가능하다.
대기업 관계자는 “창업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돌아갈 곳이 없을 것이라는 막연함”이라며 “임직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로 창업까지 과감한 도전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보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기업 문화를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 5대 그룹의 사내벤처 프로그램 운영 현황
<자료:업계 취합>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