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이 금융권 최초로 패키지방식(GBP) 차세대 시스템을 미국 시장에 적용한다.
미국 현지 시장에 최적화한 정보기술(IT) 플랫폼을 독자 개발, 운영에 들어갔다. 향후 11개 해외 법인에도 적용한다. 미국에 이어 캐나다와 중국 법인 적용을 우선 추진한다.
진입 장벽이 높은 해외 시장에서 자체 IT 플랫폼을 개발, 적용하는 첫 사례다. 향후 글로벌 차세대 시스템 표준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됐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캐피탈 미국 법인인 현대캐피탈아메리카(HCA)가 패키지 방식의 차세대 시스템을 전면 도입, 운영에 착수했다.
차세대 시스템은 영업과 리스크관리 업무 전반을 총괄하는 IT 플랫폼이다. 패키지 솔루션이란 산업 특성을 반영해서 미리 개발해 놓은 솔루션을 뜻한다. 현업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기능을 추가 개발 없이 시스템 내에서 세팅 조정만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신차, 중고차, 개인금융 등 상품 유형이 바뀌어도 패키지 솔루션을 적용하면 자동 프로세스에 따라 별도 시스템 개발 없이 처리할 수 있다. 담당자가 바뀌거나 새로운 인력이 투입될 경우 신속한 업무 파악과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현대캐피탈에 앞서 일부 금융사가 패키지 시스템 구축을 시도했지만 성공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글로벌 IT 기준에 맞는 시스템 개발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내 환경에 맞지 않는 패키지를 선정,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간 바 있다.
현대캐피탈은 700여개에 이르는 상품 속성을 패키지 모듈화하는 데 성공했다. 일일이 개발해야 하는 하드코팅(리소스를 입히는 개발 작업)에서 벗어나 금리, 상환, 스케줄, 수수료 등 상품 구성 조건의 완벽한 모듈화를 최초로 구현했다.
기존 차세대 플랫폼 대비 시스템 변경에 소요되는 시간을 70%까지 단축했다. 11개 해외 법인 가운데 최초로 미국 법인에 적용했다.
미국 법인에 적용된 차세대 시스템은 국내에서 안정성 검증을 마쳤고, 미국 시장에 최적화된 플랫폼으로 현지화했다. 차세대 시스템 도입 효과도 도드라진다. 자동차 할부와 리스가 종전에는 다른 시스템으로 이원화돼 있었다. 이로 인해 데이터가 틀리는 경우가 많고 연계 마케팅을 펼치는데 구조상의 한계가 나타나기도 했다. 차세대 시스템 도입으로 이들 두 시스템을 통합, 데이터 불일치 문제를 해소했다. 교차 판매 등 마케팅 기회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 추출이나 검증에 소요되는 업무 시간도 대폭 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캐피탈 IT기획부 관계자는 “경영관리와 영업 조직의 데이터 중복률이 40%가 넘고, 개별 부서에서 관리하는 데이터 가운데 미사용 데이터 비중이 80%에 달했다”면서 “차세대 시스템 도입으로 조직 간에 존재하던 데이터 장벽을 해소, 데이터 총량을 기존 3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파격의 비용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
기존 IT 시스템이 소화하지 못한 다양한 업무를 차세대 시스템으로 흡수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작업 오류와 인건비 상당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시스템 통합 유지·보수도 외주가 아닌 현대캐피탈 본사가 담당한다.
이번 차세대 시스템의 해외 적용은 현대캐피탈이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를 중점 경영 과제로 도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캐피탈은 해외 자산 규모만 49조원을 돌파했다. 국내 자산은 29조6577억원으로 해외 자산이 약 2배 많다. 해외 법인의 총 세전 이익 역시 7446억원으로 국내보다 약 2배 높았다.
이번 미국 지사의 차세대 시스템 도입은 HR 제도 등 소프트웨어(SW) 부문을 넘어 디지털 인프라 부문에서도 글로벌 통합 결과물이 본격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글로벌 표준 플랫폼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펼치는 기업에는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평가받는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글로벌 표준 플랫폼을 기반으로 모든 해외 법인의 디지털 경쟁력을 높이고, 중장기로 모든 임직원이 전 세계 어느 법인에서 근무하더라도 동일한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