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광가속기의 연구개발(R&D), 산업 기여도는 불문가지다. 앞서 포항에 구축한 3·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지금까지 6000여명의 연구자, 1600여개 과제를 지원해 세계적 연구 성과를 창출했다. SCI 논문수 확대, 평균 IF 상승, 일부논문 Nature/Science 게재 등 단순히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장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특히 정부가 새 성장동력으로 지목한 반도체, 소재, 바이오 등 국가 핵심 산업분야에서 방사광가속기 역할은 절대적이다. △에이즈 바이러스 증폭 차단 단백질 구조 규명 △세계 최대 결정성 하이브리드 다공성 물질 개발 △소형 광통신 반도체소자 불량개선 등은 모두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얻은 성과다.
문제는 수급이다. 방사광가속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현재 시설로는 더 이상 안정적으로 연구를 지원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3·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성능, 용량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활용도가 높은 3세대 가속기는 1994년 구축된 시설로, 성능은 세계 중간 수준 정도다. 4세대는 빔라인이 최대 5기(현재 3기)로 제한돼 사용에 한계가 따른다.
빔타임은 이용자 요구수준 절반에 불과하다. 해외 주요 방사광가속기 빔라인 제공 일수는 4.9일 이상이지만 우리나라는 절반인 55%(2.7일)에 불과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에 따르면 기업은 방사광가속기 사용기간으로 6일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총 빔타임 요구 시간 대비 공급 시간으로 추정한 수용률은 2016년 60.2%에서 이듬해 55%를 거쳐 지난해 47.6%까지 하락했다. 현재 방사광가속기로는 기업 요구 빔타임의 절반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빔라인을 추가 운용해 수용률을 제고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해 12월 기준 총 35기 빔라인을 운영, 최대 허용치인 40기의 87.5%에 도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사광가속기의 제 기능인 연구, 산업 과제 지원률 또한 지속 하락했다. 기초·원천연구 및 산업 활용을 위한 방사광가속기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과제 지원율은 2014년 82%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71%까지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사광가속기 수요는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주력산업인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연평균 4.5% 증가할 전망이다. 일본 수출 규제로 자립이 시급한 고부가첨단소재 시장규모도 올해 242조원에서 같은 기간 411조원, 의약품시장은 약 2000조원 규모까지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은 이미 방사광가속기 등 대형 연구시설 운영 계획을 수립, 늘어나는 수요에 선제 대응에 나섰다.
정부가 신규 방사광가속기 도입에 나선 배경이다. 특히 지난해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해 소재·부품·장비 자립이 국정 주요 어젠다로 부상하면서 방사광가속기 신규 구축 논의도 탄력을 받았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내년 본사업을 추진한다는 목표다.
산업체 이용 활성화를 위해 일반 연구자와 차별화된 산업 지원용 빔타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10개 내외 초기 구축 빔라인의 30%를 산업지원 R&D 전용으로 운용하고, 나머지 70%를 기초·원천연구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기존 3·4세대 설비의 빔라인을 증설, 빔타임 제공 시간을 늘린다는 복안이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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