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인증 업무가 마비되면서 휴대폰·가전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아시아, 중동, 남미 등 신흥 17개국이 코로나19로 인증 업무를 중단해 신규 인증을 받지 못하거나 갱신하지 못할 우려가 커졌다. 인증 유예 등 정부 차원의 국제 협력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에 따르면 아시아와 중동·남미·아프리카·유럽 17개국에서 인증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이 업무를 중단했다. 인증 업무가 전면 중단되면서 새로 인증서를 발급받거나 기존 인증서를 갱신할 수 없게 됐다.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러시아,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우리와 전자·정보기술(IT) 교류가 많은 핵심 신흥국이 포함됐다. 그동안 이들 국가에 전자·IT 제품을 수출하려면 무선통신기기 인증, 전기전자제품 안전인증, 에너지효율 라벨링 등을 받아야 한다.
우리와 상호인증협약을 체결한 미국, 일본, 유럽 주요국 등 55개국은 국내 인증서만으로 수출이 가능하지만 인증 업무를 중단한 17개국은 대부분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상호인증협약을 체결했다 하더라도 제도 변경 등 해당국의 사정으로 상호인증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국가도 많다. 이들 국가는 국내 인증서만으로 수출이 안 돼 해당국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17개국에 대해 휴대폰과 세탁기·냉장고·에어컨·청소기·전기오븐·식기세척기 등 주요 전자·IT 제품 수출이 중단될 위험에 처했다. 삼성전자, LG전자, 위니아대우 등 글로벌 경영을 펴는 국내 전자·IT 업체가 영향권에 들었다.
당장 수출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한 번 인증을 받으면 1~2년 동안 인증서가 유효하기 때문이다. 과거 받은 인증서로 수출이 유지된다. 그러나 인증 기간 만료를 앞둔 제품은 지금 인증을 받지 못하면 서너 달 후 수출이 불가능해진다. 특히 아직 인증을 받지 않은 신제품은 수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증 업무를 중단한 17개국은 수출 금액이 큰 데다 신흥국 핵심 시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전략 가치가 있다. 지난해 이들 17개국 대상 전자·IT 수출액은 약 160억달러(약 19조원)로 전체의 9%에 이른다. 코로나19 글로벌 확산에 따른 인증 업무 중단 사태가 단기간 정상화되기 어려운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기존 인증을 받은 제품은 유효기간 만료 시 갱신을 유예하고, 신규 제품도 승인을 유예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상대국 인증 업무가 정상화되면 사후 인증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협력을 통해 인증 규제를 한시 유예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관계자는 “한국산 전자·IT 제품 신뢰가 높은 만큼 업무가 정상화될 때까지 인증을 한시 유예하는 방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면서 “수출이 중단되기 전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