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이 끝났다. 지역구 253석·비례 47석 총 300명이 금배지를 새로 달았다. 초선의원이 151명으로 전체 절반을 넘겼다. 투표율은 66.2%로 14대 이후로 가장 높았다. 알려진 데로 '여당 압승, 야당 참패'다. 관심이 높았던 선거인만큼 여러 신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높은 투표율, 세대교체, 여성의원 선전 등 정치판을 바꿀 좋은 시그널이 많았다. 아쉬운 대목도 있었다. 지역 색채, 관권 개입, 막말 논란, 포퓰리즘 공약 등 고질적인 구태가 반복됐다.
또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홀대다. 21대는 최악이었다. 20대에는 상징성을 감안 '비례 1번'은 과학기술 몫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수학과 교수였던 박경미 의원을, 새누리당은 ICT기업인 출신 송희경 의원을 1번으로 배정했다. 이념과 색깔을 떠나 과학기술 중요성을 인정해 준 것이다. 21대에는 뒷방으로 물러났다. 선거전부터 입맛에 따라 입장이 오락가락하면서 “과학기술은 깍두기일 뿐이다”라는 자조 목소리까지 나왔다. 21대에는 깍두기는커녕 아예 밥상에서 치워 버렸다. 과학기술계는 씁쓸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문재인 정부에서 과학기술과 ICT는 '찬밥'이라며 소외감이 컸다.
그나마 이공계 출신 의원은 소폭 늘었다. 21대 국회에 33명이 입성했다. 18대 18명, 19대 23명, 20대 27명에 비하면 그래도 선전했다.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의대와 약대 출신이 두각을 보인 덕분이다. 그래봐야 전체 의원의 10%를 약간 웃돈다. 나머지는 모두 인문계 전공이다. 법학, 상경, 정치외교, 행정학 순으로 높았다. 단일 학과로 법학은 이공계 두 배에 달했다. 국회에서 '이공계 기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현실로 자리 잡았다.
사실 융합이 강조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테크노크라트'를 늘리자는 주장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수 있다. 인문계와 이공계를 기계적으로 나누는 모양새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여성이나 장애인처럼 소외 계층이나 약자가 아니라 이미 사회에서 입지를 굳힌 상황에서 정치판까지 넘보는 모습이 이기적으로 비칠 수 있다. 경제부터 사회, 문화까지 모두 중요한데 유독 과학기술만 강조하는 배경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충분히 수긍이 간다. '기술 맹신론'이 결국 정치학에서 우려하는 기술 관료가 주도하는 '테크노크라시' 폐해로 이어진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유독 과학기술에 방점을 찍는 배경은 다른 데 있다. 전공자나 국회의원과 같은 '인물'이 아니라 '과학기술' 자체를 주목해 달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했다. 일등 공신은 과학기술이었다. 경제성장을 이룬 토대였고 삶의 질을 바꿔 놓았다. 미래 대한민국도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은 빼놓을 수 없는 필요조건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꿔 놓았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가 부상했다. 물론 필요한 줄 알았던 기존 가치의 진면목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이겨냈다. 결국 ICT를 포함한 과학기술의 저력이 컸다. 'ICT와 과학의 재발견'이다. 코로나 이후에 등장할 새로운 세계도 다르지 않다. 과학을 다시 봐야 한다. 이공계 전공 국회의원을 늘리자는 주장이 진부할 수 있다. 20년 동안 전체 국회의원의 10%도 배출하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과학적 사고와 판단을 중시하는 '과학기술 리터러시' 수준이라도 올려야 한다. 극단적이지만 국회 없는 세상과 과학 없는 세상, 어느 쪽이 더 불행할까.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