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원격진료 13만건 중 오진 '0'...안전성 우려 딛고 활성화 힘실려

[이슈분석]원격진료 13만건 중 오진 '0'...안전성 우려 딛고 활성화 힘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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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의료 활성화는 코로나19가 던진 화두 중 하나다. 미국 인터넷 트렌드 예측 전문가인 메리 미커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헬스케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미리 진단하고 만성 질환을 관리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법으로 막혀있었던 원격진료도 코로나19를 계기로 한시적이지만 전면 허용됐다. 정부도 “코로나19가 던진 여러가지 화두 속에서 보건의료체계의 미래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이 있다”며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신종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 의료가 활성화되면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한 원격진료를 넘어 보건의료체계 전반에서 비대면 의료 활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진료부터 관리까지…'비대면 의료' 어떤 것들이 있나?

비대면 의료에는 원격 모니터링, 원격진료, 의약품 배송, 디지털치료제(DTx) 등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포함될 수 있다. 가장 핫이슈는 원격진료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해 지난 2월 24일부터 환자가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전화 상담과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한시적으로 원격진료가 허용됐다. 정부가 비대면 의료 적극 추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의료계와 본격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원격진료는 비대면 의료 중 극히 일부분이다. 비대면 의료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스마트 의료기기를 활용한 환자와 병원 간 디지털 헬스케어 시스템이 구축이 필요하다. 향후 신종 감염병 유행 상황에 대응해 이를 국가 차원의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웨어러블 기기, 삽입형 의료기기, 스마트폰 등을 통해 측정한 환자의 의료 데이터가 플랫폼으로 전송되고 이를 지역별·전국적 모니터링하면 신종 감염병에 신속 대응이 가능하다.

홍윤철 서울대의대 예방의학 교수는 최근 저서 '팬데믹'에서 “체온이나 호흡수를 측정하는 기기는 감기나 호흡기 감염을 조기에 인식하거나 질병의 경과를 점검해 경고를 줄 수 있고 담당의에게 전달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정보를 사용하면 전염병의 유행을 조기에 발견하거나 차단하는데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의료기기업체 킨사는 200만명의 스마트 체온계 사용자에게서 실시간 수집된 체온 정보를 통해 미국 전역의 발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보다 먼저 인플루엔자 유행 가능성을 예측했다.

원격진료와 함께 의약품 배송 문제도 함께 논의될 수 있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인도 등에서는 이미 온라인 의약품 유통망이 형성돼있으며 온라인을 통해 일반 소비자에게도 전문의약품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지난 2018년 처방약 유통 업체인 필팩을 10억달러에 인수하며 의약품 배송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갖추고도 여전히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의약품을 구입한다. 현행 약사법은 온라인 약국과 약국 외 장소에서 의약품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를 하더라도 처방약을 받으려면 대면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디지털치료제(DTx)는 만성질환이나 신경정신질환 등 다수 환자에게 비대면으로 처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일 수 있다. DTx란 앱, 게임, 가상현실(VR) 소프트웨어, 스마트알약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페어테라퓨틱스의 약물중독 치료용 앱 '리셋'이 최초로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 8개 DTx가 승인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현재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은 사례는 없다.

◇국내에서도 '비대면 의료' 활성화 논의 본격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기반 비대면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한다”면서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예로 들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비대면 산업에 대해 추가 규제 혁파에 속도를 내겠다”며 의료를 대표 사례로 언급했다.

정부가 비대면 산업 규제 개선 대표 과제로 의료 분야를 꼽고 코로나19로 모멘텀을 얻으면서 10년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던 의료법 개정안이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비대면 의료의 원격의료 필요성에 대해 많은 사람이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면서 “21대 국회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실질적이고 속도감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의료계와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신기술의 의료분야 적용은 환자·의료기관의 안전을 보장하는지, 대면 진료의 효용성을 높이는지, 미래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국민건강증진에 도움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검토돼야 한다”면서 “이런 목적이 달성된다면 의료진, 의료기관과 합리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규제 샌드박스의 실증특례 1호인 휴이노의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 서비스'에 대해 적극적인 유권해석으로 원격 상담 서비스를 가능하게 했다. 현행 의료법상 웨어러블 기기의 측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가 환자 상태를 보고 내원을 안내하는 것은 근거가 불명확했지만 보건복지부가 적극적 유권해석에 나서면서 병원이 환자로부터 전송받은 심전도 데이터를 활용해 내원 또는 1·2차 의료기관 전원을 안내할 수 있게 됐다.

◇사실상 대국민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으로 '긍정적 효과' 확인

정부가 한시적으로 전화를 이용한 상담과 처방이 가능하도록 한 2월 24일부터 지난달 12일까지 전국 3072개 의료기관에서 10만3998건의 전화처방이 이뤄졌다. 찬반 논란이 많았던 원격진료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사실상 전면 시행되면서 대규모 감염병원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임이 입증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격진료의 효율성이나 안전성 우려도 어느 정도 불식시켰다는 평가다.

정부는 비대면 의료서비스가 감염병 차단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강립 차관은 “비대면 진료는 환자, 특히 만성질환이나 어르신들의 감염위험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고 의료진과 의료기관을 감염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4월 19일 기준 13만건 이상 전화상담과 처방이 이뤄졌으며 별다른 오진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부터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전면 허용하고 있는 일본은 이번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원격진료를 적극 활용했다. 네이버 라인 자회사인 라인헬스케어가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동명의 원격 건강 의료 상담 서비스 '라인 헬스케어'가 전 국민 대상 무료 원격 상담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활용됐다.

라인헬스케어에 따르면 올해 2월 상담 의뢰 건수는 1월에 비해 40배 증가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질문이 전체 상담 건수의 절반을 차지했다. 4월 의사에 상담을 요청한 건수는 10만건 이상으로 늘었다. 이용자들은 “증상에 대해 설명하고 대응책을 제안해 준다” “나중에 천천히 문자로 다시 볼 수 있어 도움이 된다” “병원에 갈 정도의 증상이 아니거나 시간이 없을 때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어 좋다” 등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참여하는 의사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라인헬스케어 관계자는 “의사의 지역 편재에 의해 발생하는 지방의 의사 부족, 고령화 사회에 따른 환자 수 증가, 의료기관에서의 대기 시간 증가 등 문제가 되는 가운데 온라인 건강 상담이 이러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정상 근무를 하고 있는 의사들이 근무 외 시간이나 여유 시간 등을 활용해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병원 등과의 제휴도 중요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의료계에서도 선제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명지병원은 지난달 14일 영상 감시 장비 개발 등 보안 솔루션 전문기업인 ITX엠투엠과 텔레메디신 및 재택의료, 헬스로봇 플랫폼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비대면 의료' 플랫폼 개발에 나섰다. 명지병원 측은 “지금까지 병원 중심으로 집약돼있던 의료서비스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개인, 가정, 커뮤니티 중심의 의료분권화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에 근거해 추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