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명 제품에 비해 기능과 성능은 떨어지지만 서비스 기동력은 월등할 겁니다.” 정보보호 제품을 구매하려는 대기업에 제출한 자문보고서에다 담은 내용이다. 글로벌 시대에 토종기업이어서 무조건 두둔할 수는 없지만 어정쩡한 합리화는 가능한 2000년대 초반이었다. 사실 승자독식의 소프트웨어(SW) 플랫폼 시장에서 후발 주자가 생존하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기능이나 우수한 성능을 내세울 수도 없고 가치를 입증해 줄 레퍼런스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과 어느 정도의 소비자 편파 지원으로 초기 난관을 극복해야만 진입이 가능한 전쟁터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영상회의, 온라인교육 등 원격 플랫폼 시장을 활짝 열었다. 이와 더불어 영상회의 솔루션과 클라우드 시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줌(Zoom), 시스코의 웹엑스(WebEx), 마이크로소프트(MS)의 팀즈(Teams) 등 해외 영상회의 솔루션이 대부분 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네이버의 '라인웍스', 알서포트의 '리모트미팅', 포앤비의 '비디오오피스' 등 일부 국내 제품이 후발 주자로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삼성까지 미국의 구글과 손잡고 원격회의용 노트북 대여 사업에 뛰어든다는 소식도 반갑지 않다. 클라우드 시장을 아마존, MS 등 해외 기업에 내준 뼈아픈 아픔이 되풀이되고 있다. 시장을 글로벌 기업에 던지고 소비 만족도를 높일 것인지 토종기업 육성으로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다.
국내 SW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문 인력 양성과 함께 시장의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 우선 정부와 대기업이 프로젝트 과제 중심 사업에서 탈피해야 한다. 사용료 지불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 예산에 SW 렌털 항목을 적극 도입하고, 대기업도 SW의 주인이 되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SW 최저가나 SW 노임단가 논쟁도 종식돼야 한다. 세계가 플랫폼 중심 디지털 사회로 전환된 지 오래인데 아직도 조달청 입찰과 프로젝트에 매달리고 있으면 SW 기업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정부 지원은 단순한 마중물일 뿐 기업이 시장에서 돈을 벌어야 기술도 발전하고 경제도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 쉽게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정책으로 국내 산업을 방어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직접 구매와 더불어 국제 화폐까지도 논의될 정도로 글로벌 시장의 담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와 대중가요가 단기간에 세계 시장을 뒤흔드는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우리는 1980년대 후발이던 가전과 반도체가 기업의 노력, 정부의 투자, 국민의 지원이라는 삼박자로 대역전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비록 SW 시장에서 또 다른 역전 신화 창출의 삼박자 멜로디가 울리기를 기대한다.
기업들이 날개를 펼 수 있도록 규제를 혁신해야 한다. 귀를 막고 입으로만 말하는 정부는 코로나19를 기회로 근본을 바꿔야 한다. 코로나19로 경험한 규제의 완전 철폐를 결심해야 한다. 규제 개혁의 부작용 때문에 감사원의 표적이 되기 싫어하는 공무원 입장은 이해하지만 올바른 공직자 자세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한국판 뉴딜로 자율자동차,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디지털의료, 원격교육 등 디지털산업을 주도하겠다고 공언했다. 과거 정부와 달리 현장에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코로나19가 위기와 함께 가져온 경제난국 탈피의 기회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