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 승격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 3주년 기념 대국민 특별연설에서 '질병관리청' 설립을 공식화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주춤했던 법안 개정과 정부 조직 개편, 심지어 청장 후보까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20대 국회는 끝났고 21대에 우선 처리할 전망이다. 국민이 공감하고 여당과 야당이 이견이 없는 데다 청와대까지 힘을 실어줘 시간문제로 보인다. 지금까지 논의를 종합해 보면 보건복지부 밑에 외청으로 승격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이왕 변화를 주기로 작정했으니 확실히 힘을 실어줘야 한다. 16년 만에 이뤄지는 조직개편이다. 질병본부는 국립방연연구소 등 4개 기관을 1963년에 국립보건원으로 통합했고 2004년 지금 체제를 갖췄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며 국회에선 감염병 조직의 역량 강화를 위해 청으로 높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지만 결국 내부 조직만 개편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여론을 의식한 선심성 개편이 아니라면 이번에 제대로 틀을 갖출 필요가 있다.
질병본부를 둘러싼 가장 큰 문제는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복지부 산하이어서 위상에 비해 권한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조직 운영에 필요한 인사과 예산 등 모든 권한을 복지부 장관이 틀어쥐고 있다. 본부의 국, 과장 등 요직은 복지부 출신이 꿰차왔다. 인사권이 없으니 지휘체계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전문성은 떨어진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복지부를 중심으로 우선 편성하고 나머지 자투리 예산이 본부의 몫이다. 전문성을 갖춘 연구 인력은 언감생심이다. 행정조직은 예산이 권력인데 힘이 빠지는 건 당연지사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바로 '질병관리청'이다. 복지부 내 조직이 아니라 별도로 떨어져 나가면 청장이 인사권을 행사하고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독자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론으로는 맞지만 녹록하지 않다. 외청이지만 여전히 복지부 산하 조직이다. 지금보다는 독립성이 높아지겠지만 복지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 조직은 18개 행정부에 17개 외청인데 외청은 중앙부처의 집행 역할에 그친다. 정책 기능은 여전히 행정부 권한이다. 외청이 없는 복지부 입장에서야 나쁘지 않은 그림이겠지만 정작 질병본부가 운신할 폭은 작다.
문제는 또 있다. 코로나19사태에서 보듯이 앞으로 전염병이나 바이러스 감염병은 특정 부처가 따로 없다. 모든 행정부 소관이다. 그만큼 컨트롤타워 역할이 중요하고 부처끼리 협조와 소통이 물 흐르듯 이뤄져야 한다. 우리처럼 '부처 칸막이'가 극심한 상황에서 과연 외청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감염병이 발생하면 군사 작전에 버금갈 정도의 신속한 조치가 생명인데 차관급 조직으로는 한계가 크다.
그나마 차선은 '질병관리처'로 승격이다. 외청보다 훨씬 독립적이다. 국무총리 직속으로 모든 부처를 아우를 수 있다. 위상도 장관급으로 올려야 한다. 현재 직제로는 청장이나 처장 모두 차관급이다. 하지만 선례는 있다. 이번 정부에서 국가보훈처를 장관급으로 격상했다. 결국 대통령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앞으로 바이러스와 동거하는 시대에 살아야 한다. 2003년 사스(SARS), 2015년 메르스(MERS)에 이어 올해 코로나19(COVID)까지 주기적으로 감염병이 창궐하며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질병본부 변화는 결국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투자다. 투자는 과감할수록 효과가 큰 법이다. 국민 안전과 관련해서는 일부 비난을 받더라도 과잉대응이 나은 법이다. 생색내기 그친다면 고스란히 후대에 부담을 준다. 용두사미가 아닌 화룡점정이 돼야 한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