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이 갑자기 변한 것은 아니다. 서서히 되어 가고 있다. 변한다는 느낌만 있을 뿐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확실한 건 소수의 혁신가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세상의 발전은 혁신가에 의해 이뤄진다.
혁신가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면 기존 질서는 파괴된다. 기존 질서에 익숙한 사람은 새 질서를 싫어한다. 새 창조물이 기존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는 누군가에게 잔인한 행위가 될 수 있다. 혁신가에 의해 만들어진 스마트폰으로 기존의 많은 상품이 파괴됐다. 사진기를 비롯해 전자계산기, 괘종시계, 스톱워치, 일정수첩, 녹음기, 음악재생기 등이 사라졌다. 상품을 생산하던 중소기업도 자취를 감췄다. 한 혁신가로 말미암아 수많은 중소기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이처럼 혁신가는 나쁜 사람일까. 아니다. 한 시점의 경제 생태계만 보고 혁신가를 평가해선 안 된다. 현대 사회의 발전은 파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를 '창조적 파괴'라고 한다. '창조'와 '파괴'는 필연적으로 동시에 일어난다. 파괴를 두려워하면 절대 창조할 수 없다. 인류 문명의 발전도 창조에 의해 이뤄졌다. 창조하지 않으면 사회 발전은 정지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잘사는 국가가 되려면 혁신가가 많이 탄생해야 한다. 정부가 나선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혁신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영역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은 주어진 틀 안에서 보이는 방향에 따라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데 익숙한 집단이다. 본질적으로 혁신을 통한 창조와 어울리지 않다.
혁신가가 민간 영역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상을 이끌고 있는 혁신가는 모두 민간에서 나왔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혁신간접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민간 부문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 영역을 정부가 제공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의 역할은 지대하다. 선진국은 AI를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려고 한다. AI 기반 영역이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미래의 먹거리가 됨은 확실하다. AI 발전은 결국 빅데이터와 연계돼야 가능하다.
국회도서관은 최근 AI 개발을 위해 포괄적인 업무협약을 맺었다. 국회도서관은 680만권의 장서를 소장했다. 책만 소장한 상태에선 새로운 산업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다. 제조업 시대에 이룩한 위상만으로 연명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장서가 디지털화되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680만권의 지식을 디지털화하고 AI로 결합하면 활용 범위와 깊이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국회도서관은 빅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다. 서울대는 AI의 중요성을 알고 AI연구원을 설립,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빅데이터 생성과 AI개발을 서로 다른 기관에서 이뤄 내고, 그렇게 만들어 낸 성과물을 협업으로 공유한다면 AI는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민간 부문에는 많은 잠재적 혁신가가 있다. AI라는 거대한 산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많은 나무가 필요하다. 이런 나무를 하나씩 혁신으로 만들어 내는 조그만 혁신가가 꿈을 키울 수 있는 영역을 알려면 언론이 필요하다. 이번에 국회도서관이 서울대, 전자신문사와 만들어 낸 업무협약 체계는 각기 다른 3개 기관이 협업해 AI 발전을 앞당기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현진권 국회도서관장 jkhyun@nane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