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정헌법 18조. 1919년 당시 하원사법위원장 앤드류 볼스테드가 발의해 '볼스테드법'으로 불린다. 우리에게는 '금주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법 취지는 훌륭했다. 술을 없애면 정치가 깨끗해지고 폭력도 사라져 사회가 도덕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 발단이었다. 시행 이후에 약효가 먹히는 듯했지만 엉뚱한 곳에서 사달이 났다. 마피아가 창궐한 것이다. 밀주를 유통하면서 불법과 조직범죄로 이어졌다. 결국 1933년 폐기 수순을 밟았다. 선한 의도였지만 경쟁을 거스를 때 드러나는 규제의 민낯을 여지없이 보여준 사례다.
규제하면 '정보통신'을 빼놓을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은 규제기관의 서슬이 시퍼런 시장이다. 얽히고설킨 규제로 사실 '무늬만' 경쟁하는 곳이다. 오죽하면 정부기관조차 유감을 표시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2019년도 경쟁상황 평가보고서에서 '경쟁이 미흡한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점유율은 고착화됐고 신규사업자의 진입 가능성은 낮으며 시장구조 개선이 '근본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규제 왕국에 제비가 날아들었다. 통신요금이 신고제로 바뀌었다. 시장지배 사업자의 요금보고 의무가 폐지됐다. 91년 인가제 이후 무려 30년 만이다. 앞으로 담합만 없다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과연 선한 취지대로 움직일까. 쉽지 않다. '마지막 퍼즐'이 남아 있다. 바로 보조금 규제다. 요금경쟁이 힘을 받으려면 판매 장려금, 단말 보조금과 같은 리베이트 문제를 풀어야 한다. 두 규제는 별개로 보이지만 밀접히 연관돼 있다.
보조금은 '호갱'을 막겠다는 취지로 2014년 '이동통신 단말기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을 도입하면서 시행됐다. 뿌리는 이동통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97년 이동통신 경쟁체제와 맞물려 등장해 2000년 금지조항, 2003년 법제화, 2006년 2년 연장, 2008년 일몰, 2010년 방통위의 가이드라인, 2014년 단통법까지 20여년을 넘는다. 요금 인가제만큼이나 질기고 질긴 역사를 자랑한다.
보조금은 그야말로 '복마전'이다. 사업자와 정부가 엮여 복잡해지는 구조다. 한쪽이 보조금으로 싸움을 걸면 다른 쪽이 받아치며 수위를 점차 높인다. 그러다 과열되면 정부가 참견하면서 잠잠해 진다. 다시 점유율이 빠지면 싸움을 시작한다. 다시 정부 개입이다. 이 과정의 무한 반복이다. 만약 정부가 없다면 한쪽이 항복할 때까지 싸워 모두 치명상이 불가피할 것이다. 보조금 과열을 걱정해 정부가 개입했더니 오히려 조장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20년 내내 점유율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역대 최대 불법 보조금 과징금은 2018년 506억원이었다. 사업자가 보조금과 같은 마케팅에 쓰는 돈은 연간 최대 8조원에 달한다. 모두 대차대조표에 고스란히 비용으로 잡힌다. 이를 요금경쟁으로 유도하면 소비자는 훨씬 이득이다. 시장도 더욱 생산적인 경쟁으로 바뀐다. 요금과 보조금은 결국 다르지만 같은 규제다.
통신시장 경쟁요인은 따져보면 요금, 망 품질, 고객서비스, 보조금 등 네 가지뿐이다. 망과 서비스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요금과 보조금은 규제에 묶여 있었다. 결국 경쟁할 요인이 없었다. KISDI가 지적했듯이 추락하는 시장 역동성은 너무나 당연하다. 경쟁이 없으면 죽은 시장이다. 규제 정책은 '전부(All) 아니면 전무(Nothing)'일 때 효과가 크다. '전부'는 시장경제에서 불가능하다. 남은 선택은 뻔하다. 어설픈 규제는 내성만 부추길 뿐이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