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 게임이 불법 게임물 굴레를 벗기 위해서는 한국 등급분류를 받거나 지정요건 완화, 지정확대 방안을 통해 밸브가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밸브와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신청 논의를 지속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10년 전에도 안내했고 지금도 안내, 협의 중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구글, 애플, 넷플릭스 등이 국내서 역차별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심의관련 국내법은 비교적 준수한다. 구글과 애플은 자체등급분류사업자고 넷플릭스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받는다. 유독 스팀만이 국내에서 서비스되면서도 10년간 국내법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스팀 클라이언트에 한국어 UI가 적용된 건 2010년이다. 전자 소프트웨어 배급 유통망(ESD)이 한국 게이머에게 친숙하지 않던 시기였다. 지금처럼 이용자가 많지도 않았다. 스팀 운영사 밸브가 제작한 게임 '하프라이프', '카운터스트라이크' 실행 프로그램(런처)정도로만 인식됐다.
같은 해 9월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스팀이 국내 서비스 의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달러로 결제되지만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밸브에 미심의 게임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고 안내한다.
하지만 이슈는 되지 않았다. 게등위가 같은 달 상용 RPG 제작툴을 이용해 게임을 만드는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 커뮤니티 '니오티'에 7일 이내에 등급분류의 심의를 신청하거나 또는 서비스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이 더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유야무야됐다. 이 규정은 2019년에 폐지된다.
그 후 10년간 불법 게임물을 유통함에도 스팀 국내 서비스가 차단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원화 결제 지원, 한국 신용카드 결제 지원, 문화상품권 지원, 국내 핀테크 서비스 지원 등 한국 이용자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수단을 추가했다.
게등위가 밸브에 심의 안내를 하기 한 해 전인 2009년, 웹게임 '부족전쟁'이 등급 미필 게임으로 홈페이지 차단 제재를 받았던 것과 대조된다. 부족전쟁은 차단 후 게등위에 심의를 넣어 심의를 정식으로 통과했다.
2013년 민간 자율심의 이양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게등위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된다. 게임문화재단이 민간 심의기관으로 지정됐다. 게임문화재단은 게임콘텐츠분류위원회(GCRB) 설립 준비단을 구성해 2014년 발족시켰다. GCRB는 게임위 수탁업무를 처리한다.
2014년 8월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게임 국내 서비스를 중단했다. 멀티플랫폼 페이스북 게임에 온라인게임 등급분류를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등급분류 받기를 포기했고 지금까지 페이스북 게임은 국내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접속할 수 없다.
그해 9월 박주선 전 의원은 스팀에서 미등급분류 게임이 유통되는 문제에 대해 “미국, 유럽, 독일, 일본 등에서는 등급분류를 받으면서 한국 법체계만 무시한다”며 “관련법이 똑같이 적용되지 않으면 국내 기업에 대한 차별로 작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스팀 차단을 언급했다. 당시 게임위는 차단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스팀에 법 적용할 자신이 없으면 국내법이라도 고치라”며 해외 게임 등급분류문제를 다시 지적했다.
게임위는 국감 이후 밸브에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임은 한국 등급분류를 받으라고 안내했다. 이후 '미니메트로' 등이 한국어 지원을 중단했으며 'C&C4' 등이 한국 신규 구매를 차단했다. '파이널판타지13'는 한국어를 지원함에도 스토어 페이지에 지원하지 않는다고 안내했다.
민간 등급분류 기관에서 게임을 자율 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은 그로부터 2년후 2016년에 통과된다.
게임위는 2017년 국제등급분류연합(IARC)에 가입했다. 국제교류협력 강화 차원이다. IARC는 미국(ESRB), 유럽(PEGI), 독일(USK) 등 한국을 포함해 6개국 게임 심의기구가 소속되어 있는 '게임 심의기구 연합'이다. 글로벌 오픈마켓 사업자가 IARC 등급을 받으면 한국에서도 인정된다. 단 사행성 게임과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은 기존대로 게임위가 심의한다. 밸브는 IARC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