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차량용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테크놀로지, 글로벌 유통 공룡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과 손잡고 해외 진출과 성장 기회를 찾은 토종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과 중견기업도 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 기대에 협업을 확대하는 추세다. 성장 한계에 봉착한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스타트업과 함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시도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자율차량용 레이더 생산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비트센싱은 올해 현대차그룹의 액셀러레이터인 제로원과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플러그앤플레이 태국과 일본이 선정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연이어 선정됐다. 이달 들어서는 만도, 한세실업 등 국내 중견기업의 전략 목적 투자를 비롯해 LB인베스트먼트 등 벤처캐피털(VC)로부터 70억원 규모의 프리A단계 투자를 유치했다.
비트센싱은 2018년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국내 최초로 전방 차량용 레이더 개발에 성공한 만도의 초기 레이더 개발팀 멤버였던 이재은 대표가 설립했다. 창업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현대차와 만도, 한세실업 등 국내 대·중견기업으로부터 연이어 관심을 얻고 있다.
이처럼 비트센싱에 쏟아지는 관심은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이 단초가 됐다. 지난해 독일의 차량용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테크놀로지의 공식 파트너사로 이름을 올린 이후 본격적으로 국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구애가 이어졌다. 창업 이전 몸담았던 만도뿐만 아니라 관련 사업과는 직접 연관성이 없는 의류업체 한세실업까지도 전략 목적 투자를 단행했다.
비트센싱은 이후에도 BMW를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공유차량 업체 등과 공동으로 솔루션 개발 협력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용 레이더뿐만 아니라 스마트시티와 물류 분야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비트센싱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이후부터 역으로 국내 대기업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전략 투자자와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성과물을 도출해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실리콘을 이용한 친환경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이너보틀도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코스맥스와 함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화장품 용기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존슨앤존슨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 2~3곳과 기밀유지협약(NDA)을 체결하고 공동 제품 개발을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시장보다 해외 시장 진출을 우선 하는 스타트업도 최근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레이저 통증 치료기를 생산하는 웰스케어는 지난달 아마존 런치패드에 선정돼 지난 3일까지 왓치앤드숍의 유니크 파인스 항목에서 최상단 제품으로 노출되기도 했다.
이성원 웰스케어 대표는 “런치패드 등록 제품이 2만개가 넘는 상태에서 한국 스타트업 제품이 유니크 파인스 카테고리 1위 제품으로 선정돼 최상단에 노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미국 시장을 발판으로 국내 시장에서도 매출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과 투자 지원 등의 정책이 해외 진출에 따른 시장 확대 및 확보 가능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이를 위해 대기업의 전략 목적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부터 아마존, 구글, BMW 등이 연이어 국내 시장에서 액셀러레이팅을 가동하며 유망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상황에서 국내 벤처투자 생태계는 아직도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논의에만 멈춰져 있는 상황”이라면서 “대기업과 해외기업, 스타트업 간의 오픈이노베이션이 원활히 이뤄질 기회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