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안전관리법 제정이 논의된 지 20년 만인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다. 전기 화재 및 감전사고 예방 등 국민 안전 강화와 관련된 사업의 발전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공포 1년 후인 2021년 4월 1일 시행될 전기안전관리법 제정안에 대한 시행령·시행규칙 등 하위 규정이 마련돼야 하지만 과거 여러 번 제정 노력 끝에 공포된 결실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 법은 전기사업법에서 안전 규정을 분리해 별도의 전기안전관리법을 제정한 것이다. 1998년 부산 냉동창고 화재를 계기로 꾸준히 논의돼 왔으며, 이제는 제천·밀양 화재와 같은 전기 화재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선진화한 안전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 사업을 위한 규율과 전기 안전을 위한 규율이 전기사업법 안에 공존해 왔다. 그러나 이제 경제 발전 및 사업의 다양성과 더불어 전기 안전에 관한 규율이 독립법의 기반을 갖추게 된 것은 다른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국민 안전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한 것으로 의미가 매우 크다.
전기안전관리법은 전기사업법에서 규정하던 안전 분야 제도들을 단순히 옮겨오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섬세하게 보완하고 강화한 것도 중요한 성과다.
내용을 보면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 노후 공동주택의 개별 세대에 대한 점검 제도가 새로 마련됐다. 정기 안전 검사 수행과 시설 개보수 등을 통해 전기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관리 체계가 꾸려진 것이다. 전기설비 안전등급제를 도입하고 검사와 점검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한다. 전기 화재의 원인이 되는 환경 요소를 반영, 설비등급과 상태별로 맞춤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은 검사 및 점검 결과가 적합·부적합 2단계로 이뤄져 있어 노후도나 관리 상태 등이 결과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017년 전체 전기 화재 원인의 약 45.5%, 3644건이 설비 노후와 관리 상태 미흡 등으로 발생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A~E등급 등 5단계로 판정해 A등급은 법정 조기 완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E등급에는 사용정지, 시설개선 명령 등을 내린다. 또 전기설비 검사 점검 결과 등을 국민에게 공개토록 규정, 전기설비 소유자의 시설 자발 관리 및 개선을 유도한다.
또 야간·정전 등 비상상황에서 전기재해 방지와 안전한 전기 사용이 가능하도록 응급조치 지원을 확대 시행할 수 있게 된다. 안전업무 종사자의 전문성을 높이고 업무 여건을 개선하는 방향도 담겼다.
이를 위해 안전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위탁업체 등록 요건과 안전관리자 시설 개선조치 권고, 불이익 처우 금지 규정 등이 신설된다. 시설 안전관리자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업무 여건을 개선했다. 안전업무 수행 관리업체의 등록 요건을 신설하고, 시공관리책임자의 안전교육을 의무화했다. 특히 긴급 점검을 통해 위험성이 있는 전기설비에 대해 철거·이전 등 조처를 내릴 수 있는 긴급명령 제도도 시행된다. 이에 따라 에너지저장장치(ESS) 안전관리 기준을 강화했다. 기술 기준에 적합하게 설치된 경우도 유사시 긴급 점검을 통해 철거 이전 등 긴급명령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공공안전 확보를 위해 강화된 기술 기준을 소급 적용한다. 이 제도 시행으로 그동안 불량 전기설비나 ESS 등에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된 경우에도 정부가 정지·철거 등 시행을 강제하지 못한 문제점을 긴급명령 제도를 통해 정지, 철거, 이전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큰 성과다.
계획 수립부터 사후 관리까지 전기안전관리체계를 강화한다. 5년마다 전기안전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원활한 정책 추진을 위해 이해관계 기관으로 구성된 '전기안전자문기구'를 운영한다. 부적합 시설에 대한 사후 관리 강화를 위해 적합 명령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현 상태에서도 우리나라 전기안전 관리 역량은 세계에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번 법 제정은 전기안전 수준을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 줄 것으로 기대하며, 전기로 말미암은 화재나 감전 사고는 물론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체계화한 안전관리 시스템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이순형 선강엔지니어링 대표(기술사) leehty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