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개발한 'AI 의사'가 유방암 진단에서 '인간 의사'를 이겼다.”
올해 초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AI)이 유방암 진단 능력에서 방사선 전문의를 능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에 발표되자 이 같은 내용의 보도가 쏟아졌다. 이세돌과 알파고 간 세기의 대국이 오버랩 되면서 머지않아 AI가 인간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AI 의료기기로 허가받은 제품은 총 22건이다. 지난해 전체 허가 건수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실제 병원에서는 의료 AI가 그만큼 활발하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판독과 진단에 보험수가가 적용되지 않는 현실 문제도 있지만 AI와 인간 대결 구도가 의료진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난 2015년 미국에서 출시된 수면유도 마취 로봇이 높은 성능과 효용에도 마취 전문의의 집단 저항에 직면, 1년 만에 시장에서 철수한 일이 대표 사례다.
의료 AI는 어디까지나 의사의 진단을 보조하는 도구다. 특정 질병과 환자 사례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서 환자를 객관 진단할 수 있기 때문에 휴먼 에러에서 비롯되는 오진을 줄일 수 있다. 단순 판독에 투입되는 시간과 자원을 줄여서 의료진의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서울 은평구 보건소는 흉부 엑스레이 영상을 분석하는 AI 기술을 도입, 폐질환 진단 속도와 정확도를 높였다. 보건소가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진단 장비인 엑스레이의 정확도가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보다 낮아서 종합 병원 수준의 폐질환 검진이 어렵고 판독 전문의도 없어 오진 확률이 높았지만 AI를 통해 공공의료 서비스 품질을 높였다.
정부 과제로 개발된 토종 AI 의사 '닥터앤서'는 진단에만 몇 년이 걸리던 소아 희소 질환을 몇 분 안에 진단하는 임상 성과를 내고 있다. 발달 지연이 심해 고개도 들지 못하던 1세 여아에 대해 닥터앤서로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매우 드문 형태의 열성 유전형 세가와병을 진단할 수 있었다. 진단 후 도파민 투약 1개월 만에 환자는 고개를 들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서기 시작했다. 닥터앤서 사업으로 개발되는 8대 질환 21개 소프트웨어(SW) 가운데 사용 빈도는 가장 낮을지 몰라도 임상 현장에서 소아 환자나 보호자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은평구 보건소와 세가와병 환자 두 가지 사례는 AI 의사와 인간 의사의 지혜로운 상생 모델을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이른바 '팬시'한 AI 기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병원과 의료진에 진정 필요한 수단으로 개발될 때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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