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국내 최대 유료방송 가입자와 인프라를 갖추고도, 콘텐츠 경쟁에서 우위를 확대하기 위해 넷플릭스와 손잡았다. KT와 넷플릭스 제휴는 콘텐츠가 플랫폼에 우위를 확보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KT가 향후 망 이용대가 협상 등을 이어가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양 사 제휴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콘텐츠 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펼치도록 적정 규제와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 논의에도 불을 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KT, 넷플릭스 제휴 배경은
유료방송 1위이자 이동통신 2위 KT의 넷플릭스 도입은 유료방송 시장 경쟁상황 변화가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KT에 앞서 2018년 넷플릭스와 단독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LG유플러스는 가입자는 같은 해 하반기 387만명(시장점유율 11.93%)에서 지난해 하반기 436만명(12.99%)로 늘었다. 통신 3사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LG유플러스 가입자 증가가 전적으로 넷플릭스 때문은 아니지만, 신규 가입자 유치와 기존 가입자 이탈방지에 일조했음은 자명하다.
동시에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는 각각 CJ헬로와 티브로드를 인수·합병하며 KT와 유료방송 시장점유율 격차를 6~7% 내외로 좁히며 추격을 가시화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KT는 넷플릭스와 제휴를 이용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며 시장 우위를 유지할 카드로 인식했다, 경쟁사와 콘텐츠 경쟁에서 밀리면 유료방송 1위 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 아래, 격변기 유료방송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확보하기 위해 넷플릭스 제휴를 전격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망 이용대가 안전장치 확보
KT는 730만명대에 이르는 국내 최대 유료방송 가입자와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바탕으로 콘텐츠기업에 대한 협상력에서 우위를 차지해 왔다. 그럼에도 LG유플러스에 이어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를 받지 않는 조건을 감수하며 넷플릭스와 제휴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KT가 넷플릭스와 계약에서 자존심을 굽히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KT는 해외 망을 통해 넷플릭스 미국 서버에 직접 접속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캐시서버 역할인 오픈커넥트얼라이언스(OCA)를 당분간 국내 망에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넷플릭스는 대부분 글로벌 통신사와 계약에서 망 이용대가를 부담하지 않는 대신, OCA 무상설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KT와 계약에서 OCA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추가적인 협상을 진행하더라도 우선 국내 시장에서 공동으로 콘텐츠를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양사는 국내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서비스 안정화' 의무를 준수하는 내용도 계약에 포함했다. 국내시장과 법·제도 특수성을 감안했다. 이같은 조건은 다른 통신사와 글로벌 콘텐츠 기업간 거래의 레퍼런스이자 준거로 작용할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콘텐츠 우위 시대
KT와 넷플릭스 제휴는 2009년 아이폰 국내 도입 과정을 연상시킨다. 당시 3G 시장 2위 KT는 SK텔레콤 추격을 위해 애플에 무상에 가까운 광고 제공 등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며 혁신의 아이콘으로 평가받은 아이폰을 도입했다. KT가 아이폰을 앞세워 스마트폰 시장 우위를 선점하자, 이후 1위 SK텔레콤에 이어 3위 LG유플러스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IPTV 시장의 경우 3위였던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를 도입해 시장에 충격을 주고, 1위 KT가 따르는 형국이다. 아이폰 경쟁 이후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것처럼, 넷플릭스 도입 경쟁 이후 OTT와 콘텐츠 경쟁은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통신 3사 간 설비 역량과 마케팅 경쟁력이 대등해진 상황에서 콘텐츠는 새로운 경쟁 축이 되고 있다.
KT·LG계열·딜라이브 등 1700만 플랫폼을 확보한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넷플릭스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류 콘텐츠 판권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경쟁 OTT 고사는 물론이고 국내 콘텐츠 제작사의 넷플릭스 종속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 정부는 디지털미디어생태계 발전방안을 발표했지만, OTT 규제 등 방향을 구체화하진 않았다. 정부와 국회는 관련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정책개발을 서두를 태세다.
국회 관계자는 “기업이 이익의 관점에서만 OTT 제휴를 결정하며 일부 부작용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며 “OTT 관련 정책개발을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박종진기자, 손지혜기자
KT, 1위 자리 위협에 제휴 전격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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