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힘센' 장관을 좋아한다. '센 장관'은 정치인 출신을 말한다. 이유는 '해결사'로서 기대감이다. 관료 입장에서 껄끄러운 문제가 국회·청와대와 의견 조율이다. 다른 부처와 합의 불발, 예산 부족, 사회 갈등이나 국회 반대 등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안이다. 정치인 출신 장관 주특기는 이때 제대로 나온다. 추진력만큼은 단연 비교우위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센 장관의 본보기가 바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아닐까 싶다.
취임 후 부처 위상을 확실히 올려놓았다. 존재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18개 부처 서열로 보면 맨 마지막이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좀 과장하면, 정책 특성상 이슈를 몰고 다니는 건설교통부와 교육부에 맞먹는다. 알토란같은 정책을 내놨고 행보도 거침이 없었다. 공장에서 상점, 공방으로 이어지는 '스마트'시리즈는 대표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K유니콘 프로젝트와 펀드 조성, 규제 자유특구는 벤처강국을 위한 디딤돌을 놓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연결해 주는 '자상한 기업', 해외 진출을 돕는 '브랜드K', 소상공인을 위한 '가치삽시다' 등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징표는 역시 예산이다. 10조3000억원에서 13조4000억원으로 올해 30.2%나 수직 상승했다. 정부예산 증가폭 9%대와 비교해 3배 이상 올랐다. 추가경정에서도 상당한 예산을 챙겼다. 가장 최근에 통과한 3차 추경에서 확보한 예산만 756억원이다. 영역도 공격적으로 넓히고 있다. 업무를 놓고 다른 부처와 부딪치는 사례는 늘었다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여전히 '마이웨이'다. 오히려 상대방이 속앓이를 할 뿐이다. 국회에 출석하든, 청와대를 가든 언제나 중심에 있다. 이른바 힘센 장관의 전형이다.
거침없는 행보에 대해 공무원 사이에서 뒷말이 많다. 시기 섞긴 푸념이다. 행정 부처는 법과 예산이라는 장벽을 앞세워 자기 영역을 칸막이로 막아 놓는다. 암묵적으로 서로 합의한 선을 넘으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따져보면 '공무원의 규칙'일 뿐이다. 산업과 시장을 위해 필요하고 합당한 정책이라면 국민은 대환영이다. 틀에 박힌 다른 장관보다 박 장관의 종횡무진 행보가 훨씬 신선해 보인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먼저 정책 수립의 목적이다. 당연히 중소기업과 벤처 경쟁력 강화다. 경쟁력은 기초체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선순환 형태로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중소기업을 위한 자금 지원은 가장 손쉬운 정책 해법이다. 흠이라면 약효가 짧다는 점이다. 결국 기초체력은 규제 개혁으로 모아진다. 마음껏 뛸 수 있는 운동장과 사기를 높여 줘야한다. 약자 입장에서는 든든한 심판자가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과거 이야기지만 '타다'이슈가 세상을 뒤집어 놓았을 때 어디에도 중기벤처부의 목소리는 없었다. '배달의 민족' 매각에서 배달 앱처럼 정부의 민간시장 참여, 플랫폼사업 규제 움직임까지 각종 현안에 뒷짐만 진다면 정책 순위의 앞뒤가 바뀐 것이다.
또 하나는 조직역량이다. 중소기업과 벤처는 문재인 정부의 '아이콘'과 같은 역할이다. 덕분에 중기청에서 부로 승격했다. 정책 집행 역할에서 어엿한 책임 부처로 간판을 새로 달았다. 합당한 조직 경쟁력이 필요하다. 조직역량을 높이지 않으면 지금까지 정책은 장관의 '원맨쇼'에 그칠 수 있다. '힘센' 박영선 장관이 물러난 이후에도 정책을 이을 뒷심이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역량이 있다면 좋은 정책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정책은 거품처럼 고객과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 잘못되거나 과장된 시그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